#5. 아무개의 이야기

by 북극성 문학일기

아무개는 언제나 머리를 단정히 빗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되는대로 질끈 묶어 넘겼지만 유독 액세서리를 좋아했습니다. 손에는 반지 하나씩은 착용해야 했고 때때로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기다란 은색의 목걸이도 착용했습니다.


반짝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온통 새까매진 한강 대교에서도 물결에 비친 서울의 빛들을 바라봤습니다. 시야에서 색색의 빛들은 춤을 춥니다. 점, 번짐, 파동. 물이 나아가는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멀리까지 가다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아무개는 실은 2000년대 초에 이미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는 여전히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사실은 그가 죽었고 그걸 본인이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개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이야기할 수는 없고 또 생전 그를 알았던 그의 지인들은 이미 그를 저, 흘러가는 강물에 흘려보낸 터라 아무개도 지금 와서 어떤 말을 누구에게 들려줘야 하나 망설였습니다.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야 아무개의 존재를 들추게 된 까닭은 세상이 조금씩 아무개에게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아니고 바로 작은 빛 때문인데요. 아무개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그가 사람이 아닌 형태로 정처 없이 지낸 지 20년 정도 흐르면서부터 조금씩 그의 투명한 혼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반짝거리는 미러볼의 형태라기보다는 비에 젖은 물웅덩이에 비치는 네온사인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빈틈없이 투명해서 여러 사람이 쉴 새 없이 통과하는 여린 몸이 아닌, 목욕탕의 뿌연 거울과도 같은 형태로 아무개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장소든지 거리낌 없이 온 도시를 활보하던 아무개였기에 그의 당황은 어쩌면 당연한 일. 빛을 통과하던 몸에서 이제는 빛을 머금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령 손 쪽에 해가 들면 손가락의 모양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걸 본 사람들이 경악했으리라는 것은 그리 놀랄 소식도 아닌데요.


#빛의귀신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아무개의 일부는 사진 찍혀 SNS에 떠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며 여행 코스를 개발해 그를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당황했던 아무개는 우선 산과 바다, 인적이 드문 곳, 그리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로 이리저리 이동하며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관찰하고 일종의 결과를 도출해 냈습니다.


빛이 저장되어 빛나기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반나절은 지나야 빛을 머금고 있던 신체가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고, 평온하게 살아가던 중 발견된 새로움에 적응하기까지의 순간들이 길고 지난해서 아무개는 자신이 많이 소진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아릿함이 아직 그를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한 걸까요? 아무개는 왜 아직도 자신이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론 자신의 몸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면서 두려워하고 궁금해할 때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개가 자기 생의 마지막을 자신이 직접 정한 건 홀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시작이었기에 낯선 이들의 낯선 관심은 이런 변화가 찾아온 후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아무개가 향한 곳은 한강 둔치였습니다.


죽기 전, 20대 초반일 때 자주 타던 버스에 그는 다시 탔습니다. 버스 노선은 조금 바뀌었지만, 강을 건너 이동하는 건 같았습니다. 시간은 밤 10시, 승객은 술 취한 몇 명뿐인 버스 깊숙이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내리는 쏟아지는 비는 강물에 파동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파동, 빛, 번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자꾸만 강물에 비친 빛의 형태를 어그러뜨리고 있었습니다. 대교 밑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는데 그걸 직시하는 것보다 물그림자에 비친 걸 볼 때 더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아무개는 자신이 환한 빛보다 어두운 빛을 더 사랑한다고 남몰래 사랑해 왔다고 또 생각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버스 지붕에 비가 둔탁하게 떨어지고 이따금 치는 천둥소리는 심장을 섬찟하게 했는데 이미 심장이 사라진 후임에도 이런 감각을 느끼고 있게 해 주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천둥이 치고 난 뒤에는 온 세상을 환하게 하는 번개. 일이삼사오육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번개 치는 타이밍을 재면서 시시덕대며 뒤 칸에 앉아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문득 잠이 들었음에도 아무개를 깨울 기사님이 있을 리 만무했어요. 보이지 않는 아무개를 태우고 그 새벽 사이 기사님들은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마침내 바라본 풍경은 환한 빛,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무지개였습니다. 어릴 적 동네를 쏘다니며 많이 본 무지개를 귀신이 되고 난 후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홀로 사라진다고 다짐했던 그 시점부터 본 적이 없었어요.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누르고 아직 잠에서 채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에서 희미한 무지개를 바라봤을 때, 자신이 빛이 좋아 빛 자체가 되고 싶어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원념이 빛을 머금을 수 있는 몸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아무개는 깨달음을 얻고 오랜만에 마음껏 무지개를 바라봤습니다. 어느덧 출퇴근 시간이 가까워졌고 승객들이 탑승하기 시작하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몸이라면, 그리고 그 빛이라면 더 떠돌며 많은 빛을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곳곳에서 빛의 종아리, 빛의 다리, 빛의 머리카락이 세상을 활보할 것을 예고하는 어느 날의 아침이었습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4. 중경삼림이나 라라랜드, 붉은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