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라도 해야 해.
새벽까지 불행한 나의 미래만 그리던 그 시절에 내 머릿속에서 슬그머니 들던 생각이 있었다. 불안에 관한 생각이었다. 불안의 정서에 오래 노출되어 있으니 너무 힘들고, 지쳤다. 사는 게 행복해야 하는데, 일상의 평범함이 주는 행복의 순간에도 나는 자신을 심연 속으로 데리고 갔다. 어느 날부터는 이런 내 모습과 상황에 화도 났다. 그런 날이면 동생에게 말로 좋게 말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해 더욱 큰 화를 내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 자책하기를 되풀이했다. 어느 날, 동생이 직접적으로 “언니,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라고 말했고, 그때 정신이 차려졌다. 내 문제를 자꾸 다른 곳에 화풀이하고 있는 모습을 그제야 발견했다. 이대로 두면 더욱 심각해질까 우려스러워 상담센터에 상담을 신청했다.
세상에는 언제나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수요가 많아서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3주 정도가 지나서야 면접 상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면접 상담은 상담을 보기 전, 각종 설문지를 통해 내 현재 상태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상담 결과에는 '안정성 추구'와 '도전정신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도전을 꿈꾸니 그 괴리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상담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결과를 듣는 순간 딱 '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서 생활하는 안정성을 추구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모든 상황을 다 감수하고 독일로 가고 싶어 하는 도전 정신이 내 안에서 날마다 싸웠기 때문이다. 이런 접수 상담을 마치고 비로소 상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3월 즈음이지만, 현재는 5월. 15회기의 상담에서 지금은 단 3회 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나는 상담을 시작한 이유조차 잊고 지낼 만큼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 왜 잊게 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쓰고자 한다.
매주 화요일 11시, 상담을 진행했다. 코로나 시대라서 요즘은 상담도 비대면으로 화상 통화를 통해 진행한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과연 편하게 내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일까 고민했는데, 가끔 동거인들 있을 때 신경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화상 통화로 상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어폰을 끼고 심각한 고민을 이야기할 때면 몰입도 잘 돼서 가끔 이야기하다 상담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한 적도 있다. 최근엔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도 비대면 상담을 추천할 정도였다. 상담 선생님께서도 전에 없던 화상채팅으로의 상담이 익숙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회차가 거듭되면 될수록 나와 선생님 모두 새로운 방식의 상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난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시작이 어떻게 시작이야,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운전학원에 가도 핸들을 잡는 그 순간이 배움의 시작인 것처럼. 그러나 상담은 예외이다. 상담은 '시작이 반'이 맞다. 우선 신청하기만 하면, 그리고 시간 맞춰 상담실에 가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상담 선생님과 대화하며 숨겨둔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2회 차의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가장 강력하게 느낀 건, 내 마음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나이고, 나라는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나이다. 상담실까지 발걸음을 향할 수 있었던 건 나의 의지가 있어서였다. 그 의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엔 내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을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한 나의 걸음 중 하나가 상담이다. 물론,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너무 안달복달하며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요즘같이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할 때가 더욱더 많아져서 내 행복 따윈 관심 없어지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중심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상담하는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바로 자전거이다. 나의 경우, 집에 있기보다는 바깥에 나가서 움직이려고 시도해야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성격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면서 일상의 사물을 관찰하며 생각을 환기할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와 마음 모두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소중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생각은 대개 부정적으로 흘러간다'라고 말씀하셨다. 꼬리를 물고 흘러간 생각을 절단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상담에서 배운 것뿐만 아니라 드라마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드라마 바깥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쉽게 사라진다는 지점이다. 앞서 동생에게 화를 냈을 때 분노의 감정은 머물렀다가 금방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분노 대신 죄책감의 감정이 남아있다. 그러면 다른 감정에 사로잡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스쳐 지나가는 이 감정들을 때로는 붙잡아서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를 생각하며 원인을 찾아내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복잡한 인간의 감정엔 정해진 답은 없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때론 그냥 흘려보내야 더 편한 감정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담하면서 이런 문제, 고민, 걱정들에 답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답은 없지만, 어떤 선택이든지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해나가야 하는 그 의지를 잊지 말자고 상담을 거듭하며 다짐했다. 내 마음을 지키는 일에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것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 내 마음에도 금이 가기 때문이다. 남은 3회의 상담을 받는 동안 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소리도 내본다. 행복하기를 바랐으니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내 마음의 열쇠를 지닌 내가 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