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모든 게 하룻밤 사이의 꿈 같아.

또 다시 학기가 시작됐다. 게다가 비대면 수업

by 북극성 문학일기




아득하다. 학교 취업 지원 센터에서 진행한 공기업 취업 방식에 대해 설명들었다. 난생처음 취직용 자기소개서도 써보고 첨삭도 받았다. 나는 아직 “스펙”을 준비하지 못한 쪼랩 대학생이라 준비할 게 산더미다. 큰일이다. 이번 주 내내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수강 신청 실패한 18학점을 21학점으로 만들기 위해 교수님들께 증원 요청 메일을 세 번이나 보내고 나니 불안도 우울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든 게 하룻밤 사이의 꿈 같다. 쫓기듯 정신이 든 기분이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서 꼭 봄과 같다. 문득 청춘이라는 단어에 왜 '봄' 춘'이 들어갔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푸릇푸릇한 것들은 왜 그렇게 짧은 시기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가. 시간도 마찬가지다. 독일 교환학생 포기 담을 적고자 써 내려간 나의 글은 위의 글을 끝으로 더는 쓰지 못했다. 대학 생활이 아주 바빴기 때문이다. 물론 진담 반 핑계 반이다.


3월 초에 쓴 이 글에는 조급함의 감정이 담뿍 담겨 있다. 내게 독일은 취업 전, 마지막 일탈이자 모색과도 같았으니까. 온전히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그 너머의 달콤함을 기대하며 준비했던 독일로의 교환학생을 포기하고 바로 시작하게 된 1학기였다. 학교생활이라도 여유로우면 좋았을 텐데, 졸업을 위해서는 21학점을 들어야 했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취직 걱정도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내게 독일이 이상이었다면 이젠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으로 진행된 학교 수업은 과제 폭탄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국도 벌써 1년 넘게 지속하고 있고, 교수님들께서도 비대면 방식에 적응하신 상황이었다. 과제는 두 배, 게다가 시험도 보니 하루하루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과제를 해나갔다.


과제 양을 실감할 수 있던 하나의 지표는 독서실이었다. 100시간 독서실 이용권을 끊고 과제가 많은 주에는 거의 날마다 독서실을 향했다. 21학점 중 단 하나의 과목도 글쓰기 과제가 없는 수업이 없었고, 심지어 그 글의 종류도 다양했다. 에세이, 소논문, 논문 읽고 요약본 제출, 시험 대체 과제로 논술형 글쓰기, 시나리오 등 최소 150장이 넘는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노트북만 두드린 덕분에 손목은 시큰거렸고, 학기 끝 무렵에는 손목 보호대가 없으면 글을 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100시간 독서실 이용권은 바닥이 났고, 또다시 100시간을 추가해서 끊었다.


아주 바빴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주어진 과제를 해나가는 와중에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무기력했다. 돈을 벌기 위해, 근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힘을 쥐어짜 내어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지만,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도 이내 손에 힘이 풀어졌고 다시 힘을 주는 일을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니터 너머의 교수님과 아이컨텍을 조금 더 찐하게 할 걸 하는 후회도 든다. 글 과제들은 열심히 제출했지만, 정작 수업 면에서는 무얼 배우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았다. 그저 꾸역꾸역 출석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아주 애매해져 버린 것이다.


달릴 거면 운동화 끈 꽉 묶고 달리든가, 쉴 거면 셔츠 풀고 눕던가 해야 한다. 그게 멋지고 쿨하다. 난 그저 포기를 미루고, 생각하기를 미루고,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드는 독일 생각에 괴로워했다. 해야 할 일도 100%는 무슨, 턱걸이 수준이 목표가 됐다.


여기까지가 바쁜 학기 생활로 인해 정작 포기 담을 쓰지 못했다는 진담 및 핑계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내겐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에너지 총량 법칙에서 독일 포기 담을 쓰고자 하는 에너지는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지난 몇 년간 독일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과도 같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 있는 무력감도 사라질까.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결국 꿈과 이상과는 멀어지게 되는 걸까. 어느 순간 독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모든 게 하룻밤 사이의 꿈과도 같다. 찰나의 꿈은 꿈인 채로 두게 되면 사람들이 말하는 '어른'이 된 거다. 이제 난 청춘의 의미도, 어른의 의미도 모두 아주 조금씩 알게 됐다. 그래도, 아직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짧은 봄을 즐기고 싶다. 미련을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내 마음을 꼭 붙잡아 두고 싶다.




*애매한 내 모습, 그래도 유쾌하게 바라보고 싶을 때 듣는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uNuT7Oxa2L8


신승은 가수님의 '애매한 게'를 듣고 있으면 애매한 게 뭐 어때서! 라며 외치고 싶어진다.

모든 일들이 다 선명하고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점심 메뉴 고르는 일조차 이렇게나 어려운데.


이것도 애매한 게 일기라고 하기엔 리듬을 좀 타고 있고 노래라고 하기엔 그냥 말하는 거 같은데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나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엇도 아니라 좀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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