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 여유로운 풍경은 나의 것이 아니야.

독일에 온 지 10일이 지났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누군가가 나에게 독일에 와서 뭐가 가장 좋았어? 라고 묻는다면, 독일 10일 차인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답할 거다.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야. 그걸 내가 피부로 느껴서 좋아."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온 친구가 내게 물었다. 독일에 진짜 도착하니까 어떤 기분이 드냐고.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다. 솔직한 진심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여기까지 힘겹게 온 나 자신이 안쓰러워지기 때문이다. 이곳에 나의 진심을 살짝 적어보자면,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내려다본 독일은 내 생각보다 평범했다. 위에서 내려다봐서 그런지 하나의 나라라는 생각보다는 레고 블록과도 같았다. 낮은 건물들이 일정하게 붙어있고 산과 나무들이 보였다.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 계속 이동했지만,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이 정도면 한국과 다른 건 뭘까?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독일의 어떤 모습을 상상한 걸까? 비행기는 착륙했고 어쩐지 이대로 다시 집에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내렸다. 걱정했던 입국심사는 예상외로 쉽게 끝났다. 어떤 목적으로 방문했고 숙소는 어느 곳을 이용하냐는 평이한 질문이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는 외국인들이었다. 독일에 왔으니 독일인들이 공항에 많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해외여행이라고는 동아시아 지역만 가본 나는 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약간은 얼어붙은 마음으로 짐을 끌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지하철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낯선 외국인이 Bist du Japanisch? 라고 물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처음 들어본 나는 당황했다. 이걸 그냥 이렇게 물어봐도 괜찮은 건가 자문했다. 사실 이게 무례한 질문인지도 분간이 잘 안 갔다. Nein, ich komme aus Südkorea.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상황이 일단락됐다. 얼어붙은 마음이 더욱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다음 날, 시내에서도 또 다른 외국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될 거라는 걸.


어쩐지 소심해진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있지만, 동양인은 보기 힘들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인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이렇게 강하게 느껴보다니. 한국이 아닌 외국이기 때문일까. 내 피부색, 얼굴 모양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머리색이라도 비슷하면 좀 괜찮을까 하는 마음과 외국에 왔으니 과감한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합쳐져 도착한 다음 날, 염색약을 사러 갔다.


나는 보라색을 골랐지만 검정 머리에 해서 그런지 그냥 검정 머리가 됐다. 머리카락 밑부분은 지난 염색으로 인해 갈색이었지만, 그 부분도 완전히 검은색으로 덮였다. 그야말로 동양인 머리의 표본이 됐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머리를 탐색했다. 나처럼 완전한 검정 머리는 보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다. 자포자기하고 그냥 이렇게 지내기로 했다. 애초에 내 머리를 노랑으로 염색한다고 해도 피부색을 염색할 수는 없는 거다.


도착하고 일주일 동안은 무얼 딱히 하지 않아도 잠이 쏟아졌다. 시차 적응 때문일까. 이와 동시에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 자체가 피곤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야 좀 적응할 수 있었다. 겁이 나지만 혼자 집 주변 산책도 해보고, 친구와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점점 처음보다는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무섭긴 했다. 그래도 도시 곳곳에 있는 나무와 꽃, 자연의 모습이 안정을 찾게 도와줬다. 숲의 냄새를 맡으며 평화로웠고 새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노곤해졌다.



자연, 그리고 멋진 풍경. 흔히 유럽이라고 할 때 생각하는 여유로운 모습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 상상 속 유럽의 모습 중 가장 일치한 모습이다. 공원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았고, 부모들은 유모차를 끌고 산책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윗옷을 벗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가지고 온 빵에 버터를 발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몽실몽실한 구름도 이 아름다운 풍경에 한몫했다. 아름다워,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저 여유로운 풍경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이 모든 풍경은 화폭과도 같았다. 나는 저 멀리서 이방인으로 이 찬란한 그림을 지켜보는 것이다. 내겐 그들이 가진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아가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한 달이라는 기한이 있는 나는 조급함이 있었고, 동양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신경 쓰는 마음도 공존했다. 이런 마음으로 여유로운 풍경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저 '구경'으로만 존재해버리는 거다.



언젠가 나도 햇빛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태평히 한나절을 보낼 수 있을까. 많은 나날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쉬어본 적 없는 내 삶의 데이터들은 이 풍경에도 낯섦을 느꼈다. 마음에 여유를 가져보자,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말을 되새겨 보게 되는 독일 생활이다. 사실 이건 여유의 문제만은 아니긴 하다. 한 달 여행이지만, 내가 외국에서 아예 거주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했다. 동양인인 나는 낯선 나라에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등의 생각들.


하루하루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늘어만 간다. 매일매일 다른 경험을 하고 매일매일 다른 생각들이 떠오른다. 확실한 건 이곳이 한국이 아니기에 생긴 질문들이라는 것. 약속된 시간인 한 달이 지나면 나는 어떤 결론을 얻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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