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독일, 여길 결국 와버렸다.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by 북극성 문학일기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학교 과제로 허덕이던 4월에는 메모장에 한 줄의 메모를 남겼다.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 흘리고 글 쓰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도 독일에 가고 싶은 미련의 끈을 놓지 못했다. 내가 잊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걸까. 과제로 바쁜 와중에도 독일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따금 꺼내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결국 독일에 가지 않으면 이 마음이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저 땅만 밟고 오고 싶어. 땅 밟으면 미련 없이 독일에 가기 위해 준비한 2년간의 시간, 마음 모두 잊고 올 수 있을 것만 같아. 입버릇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이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도, 낭만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오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독일어와 독일문화를 배우면서 점점 환영은 커져만 갔기에 이걸 빨리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깨버리고 싶어- 깨버리고 싶어- 마치 순서라도 있는 양, 이 환상을 깨버리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코로나 시국에 '독일에서 한 달 살기'라는 방식을 결정하게 됐다. 내겐 코로나 시국에도 독일로 공부하러 온 독문과 친구가 있었다. 친구와 대화하며 함께 지내자고 결정됐고, 그 친구 집에서 한 달 생활하며 그야말로 '땅을 밟아보자'고 다짐했다. 학교 종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


여전히 독일을 놓지 못하던 나는 결국 취업도 공부도 인턴 생활의 기회도 모두 두고 독일로 왔다. 사실 이 다짐까지도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갈까, 말까를 수십번 넘게 반복했고, 과연 이 시국에 가는 게 맞는 걸까를 끝없이 자문했다. 그리고 6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야 이 고민을 그만하게 될 수 있었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기에 이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막상 결정이 확정되고 나니 복잡하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뭐가 됐든 돌이킬 수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내 마음가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의 독일로 입국은 원래보다 더욱더 까다로웠다. 72시간 이전으로 코로나 PCR 테스트를 해야만 했고, 가격은 무려 약 12만 원 정도였다. 게다가 단순 여행 목적으로는 입국이 어렵다는 안내 글을 보았기에 독일연방경찰에 내 상황을 독일어로 설명하는 메일까지 보냈다. 주민등록증 사본, 여권 사본, 학교 재학증명서, 6개월 내의 출입국증명서, 독일연방경찰과 주고받은 메일, 친구 집의 안멜둥 서류, PCR 영문 테스트 결과까지 다 정리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독일연방경찰 측에서 한국인은 어떤 이유로 독일을 방문하더라도 입국이 가능하다는 답신을 보내줬고,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로 짐을 쌀 수 있었다. 해외에서 장기간 살아보는 일도 처음이기에 도대체 한 달 짐은 어떻게 챙기는지, 해외에는 어떤 걸 가져가야 하는지도 모두 어려웠다. 이 와중에 입국 심사 영어와 독일어를 준비하니 종강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의 과정이 그저 '상상'이었다면, 이제 현실이 되어버린 독일행은 하나씩 차분히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가득이다.


그렇게 출국 당일이 됐다. 아침에 친구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가방 안에는 학교 선배가 준 엽서, 과외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필기도구, 동생이 준 옷, 가족들이 챙겨준 음식, 심지어는 석회수를 정제하는 샤워 필터까지 잔뜩 넣어갔다. 애정이 어린 마음들에 감사 인사를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10시간 반의 비행을 끝내고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결국, 독일, 이곳을 와 버렸다. 오늘은 벌써 9일째, 이제야 조금 적응을 끝냈다. 실제 독일을 와서 느낀 것, 내 상상은 얼마나 많이 깨졌는가, 그리고 이곳에서 어떤 것들을 했는지를 이어서 써보고자 한다. 비록 교환학생은 포기했지만 내겐 이제 한 달 살기라는 방식으로 독일을 그려나가는 통로가 생겼다.


남은 기간 그저 무사히,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오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한 달 살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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