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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Feb 08. 2021

3살 아이에게 문해력을 가르친다고?

워킹맘다이어리

오늘 어머님으로부터 <유아 독해>라는 서적을 선물 받았다. 글을 모르는 23개월 아이에게 문해력을 가르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다. “서영이가 글을 좋아하니까 조아도 나중에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가슴이 살짝 뭉글했다. 항상 누군가에게 가르침 받기에 바빴던 내가, 누군갈 가르치는 존재가 되어준다. 그것은 동시에 나를 다시 길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주는 의도치 않게 글을 쓰고 읽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 한주 였다. 특히 이번주는 글같지도 않은 글임에도 내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아 글을 쓴 분이나, 내 글에 언급된 글들을 찾아 읽어보았다는 사람들을 제법 만났다. 너무나 신기했다. 작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두근거린 한 주 였다.

어머님이 주신 <유아 독해> 서문에 써진 글을 읽어보았다. 생활 글, 이야기 글, 지식 글. 설명서나 안내문, 심지어 목차도 글이라고 한다. 맞다. 이런 것들도 모두 글이었지. 하긴 해외여행 가면 보는 간판이며, 메뉴판이며 모두 글인데, 글인 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글이라는 건 작가들만 쓰는 게 아닌데 글다운 글같은 멋지고 유창한 것만 글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유아 독해는 언제나 ‘낭독하기’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항상 또박또박 크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느낌을 살려 읽어준다. 독해 능력을 기르는 일은 아이 스스로 글을 이해하기를 돕는 행위다. 그래서 아이가 지레 겁먹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해주어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일만은 아니라서 자꾸 나의 독해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아 독해란 소통을 가르치는 것이구나!

생각해보니 바로 어제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최근 참새방앗간이라는 1년짜리 글쓰기 프로젝트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를 트레이닝 받고 있다. 어제 첫 번째 수업이 있었다. 1분기에는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한다. 김경윤 선생님(이하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글쓰기로는 글쓰기 근육이 길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뜨끔 하는 나를 보니, 요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쓴다고 약간 우쭐했던 모양이다. 그 다음 선생님 말씀이 우쭐한 내 마음에 더 비수를 꽂는다. 글을 많이 쓴다고 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쓴다는 생각에만 머무르지 말라. 또, 좋아하는 것들만 읽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정반대 편에 글을 읽어보라. 모든 게 내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가 분명했다.

1분기 동안은 매일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든 걸까. 살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이니 당연히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게 될 것이라 여겼다. 쓰는 게 좋아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읽는 것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들을 읽는 삶이지만, 참새방앗간 첫 수업을 듣고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체감한 것이다. 그러나 글을 배우는 아이의 마음으로, 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선생님 가라사대, 가능한 것을 쓰라 하셨으니까. 쪽팔림을 감수하겠다는 그 의지가 글쓰기의 첫 단추인 것이니까. 두려워하면 할수록 글이라는 것은 어려워 지는 법이라 방금 배웠으니까.      

읽을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한 것을 글로 옮긴다. 그러면 내 것이 된다.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배가 아프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정말 변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이 책이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책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인간이 고등동물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으로 동물보다 월등함을 인증받은 것일까. 동물과 교감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무엇부터 시작 해야 할까. 나는 매일 동물을 먹는데, 동물과 소통하기 위해서 동물 먹는 것을 멈춰야하는 것일까. 멈춘다면 무엇부터 멈춰야 할까. 내가 생각한 것을 어떻게 실천시킬지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제가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계속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역겹다고 여기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선뜻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것 보다 합리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이유들만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뜻밖의  책<유아독해>를 접하며 얄팍한 깨달음이지만 알 것도 같은 깨달음 하나는, 내 것으로 소화 시키지 못 하는 책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책을 소화 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소화를 못 시키고, 책이 주는 여러 의제들에 대답을 못 하는 것이 잘못 된 일일까. 이 책이 준 여러 질문에 내가 내놓는 대답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오는 대답인 것이라면, 그것만큼 대단한 일은 없지 않을까. 대답이 쉽게 나오는건 오히려 이미 세상에 널린 대답들 중 하나인 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배가 아파도 계속 읽고 헛구역질이 나더라도 생각하자. 생각한 것을 글로 쓰자. 세상에 없는 물음과 대답을 얻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정반대편에 있는 글을 읽자. 글을 읽는다는 것과 쓴다는 것. 어렵지만 해내는 질문과 답. 맙소사. 너무나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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