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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Feb 16. 2021

벌린 일, 떠벌리고 다닌 일

워킹맘다이어리

이번 주는 바빴다. 인사이동이 있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새로 부여받은 업무를 해내느라고 있었고, 팀원 중 한 명이 퇴사준비를 하고 있어서 업무 인수인계를 받느라도 있었다. 더구나 글을 쓰겠다고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이나, 뭘 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들을 약속처럼 지키고 해내느라 더 분주한 한 주였다. 연휴에는, 그냥 묵혀 두다가 다시 써볼까 하고 열어 본 초고를 밤새 퇴고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에 예술가들에게 있다는 사기꾼 증후군을 나도 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초고를 고치면서 내 글의 터무니고 없고 맥락 없음을 한탄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내가 썼던 문장들이 머릿 속에 동동 떠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지금 쓰는 워킹맘 다이어리도 그렇다. 주변 사람들은 일기치고는 꽤나 장황하고 작가치고는 어설픈 나를 보며 멋지다고 칭찬해주었지만, 나에게는 내가 쓴 글들이 예고도 없이 내 머릿속에 불쑥 찾아와 옛날 드라마에나 나오는 사채업자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내가 쓴 글들이 무슨 계약서도 아니고 내가 나를 괴롭히며 혼자 괴로운 것이었다. 세상에 일하는 엄마가 얼마나 많은데 글 속에서 너무 징징댔구나. 회사 다니는 이유가 유정한 동료 때문이라느니. 다 큰 어른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물러터진 심장과 머리다.  바빴고 정신없었다는 핑계. 그런데 허구언날 육아 핑계를 대다가 다른 핑계를 대다 보니 육아 핑계는 확실히 덜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전에는 애매하게 육아 생각을 했던게 분명 했다. 아예 육아를 안 해버리니 육아 핑계는 안 대고 있었다. 역시 핑계는 애매하게 노력한 사람들의 것이다.

오늘은 또 한 주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해보다가 결국 워킹맘 다이어리를 시작하기 전의 마음으로 회귀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나 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주눅이 들고 만다. 한 주 쉬면 어떨까 싶어서 덮어두려다가 다시 글을 쓴다. 이제 글을 쓰는 게 거드름이거나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가르침을 주려는 것의 성질은 아닌 거다. 사람들 비위를 맞춰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아서 내 팔자 좋게 해보겠다는 요량도 아닌 거다.   그냥 생긴대로 살고, 생긴 거랑 똑같은 글을 쓰고, 만족하며 사는 삶인 거다. 생각이 깊지는 또 않아서 여기서 한 말을 여기서 또 떠벌리는 사람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격으로 회사에서의 일도, 글 속에서의 의미도, 육아할 때의 마음도 다 비슷비슷하다.      

이번 주면 팀원 한 명이 퇴사를 한다. 그냥 이제는 동료 얼굴만 봐도 눈물이 고인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을 동료에게 던지며 동료를 울려버렸다. 점심시간에 밥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울어버렸다. 이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인지. 나라는 사람은 당최 무슨 생각으로 이리도 물러터지기로 자처만 하는가. 그래도,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은 사실 나랑 비슷한 마음으로 살고 있으면서, 나의 아주 가까이에서, 아닌 척 시치미 뚝 떼고 어른인척 하고 있지 않을까. 난 그 사람을 꼭 찾고 싶다.  꼭 찾아서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씨익 웃어버리고 싶다. 점심시간에 난데 없이 울어버린 우리들처럼, 그 사람은 내 아주 가까이에서 아닌 척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난 그 사람을 찾아서 꼭 같이 그냥 떠들고 싶다. 이런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거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내 생활이, 실은 무진장 말이 되는 거 였다고. 실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있는 거라고.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기어코 떠벌렸다.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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