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상실감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행복을 누리는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만의 '월든'을 찾고 싶었다."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 보면 마음속 요동치던 파도가 잔잔히 가라앉았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이를 어떻게 내 삶에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글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소로는 단 한 자루의 도끼만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행복한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비와 석양, 꽃잎 같은 자연 속에서 찾아냈다. 비록 소로처럼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 순 없지만, 텐트를 치고 자연을 바라보며 행복을 누리는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 나만의 '월든'을 찾고 싶었다.
캠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용품을 준비했다. 소로는 도끼 하나로 충분했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오토캠핑(Auto Camping)을 주로 할 예정이라 차에 실을 수 있는 부피가 작은 물품으로 준비했다. 기존의 원터치 텐트는 경량 텐트로 교체했고, 텐트 안에 설치할 침대도 골랐다. 캠핑용 침대 중 가볍고 부피가 작은 야전 침대를 선택했다.
이 침대는 습기와 벌레를 피할 수 있지만, 편안함은 떨어졌다. 일부 사람들처럼 에어매트를 추가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짐이 더 늘어날 것 같아 포기했다. 소로의 말이 떠올랐다. '사치와 안락은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초래한다.' 자연 속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이 정도의 불편함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월든'을 찾아 나설 차례였다. 가평의 캠핑장과 대부도 캠핑장. 두 곳을 발견했다. 가평의 캠핑장은 권고사직과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찾은 첫 캠핑지였다. 남양주와 가평군 경계의 축령산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축령산에서 내려온 울창한 숲이 캠핑장을 품고 있어, 어디를 봐도 녹음이 가득했다.
솔향 가득한 바람이 불어왔고, 가을이면 캠핑장 내 사과나무 밭에서 붉게 익은 사과를 만날 수 있었다. 캠핑장 가장 안쪽에는 텐트 한 동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campsite)가 있어, 다른 사람들의 방해 없이 조용히 캠핑을 즐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숲을 바라보며 '숲멍'을 하고 있으면 세상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안산의 대부도는 오이도에서 시화방조제를 지나면 만나는 섬이다. 섬 남쪽 끝에는 산을 깎아 만든 캠핑장이 자리하고 있다. 캠핑장 중앙의 넓은 놀이터와 산에 설치된 통나무 놀이기구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소리가 마치 자연이 내뱉는 숨결처럼 크고 생동감 있게 들린다.
캠핑장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제부도가 보이는 해변에 닿는다. 서해의 특성상 조차를 고려하지 않으면 푸른 바다 대신 검은 뻘을 만나게 되지만, 그 또한 서해만의 넉넉한 품을 느낄 수 있다.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나를 포근히 감싸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평과 안산의 캠핑장은 각기 다른 자연환경으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방식도 달랐다. 외롭고 슬플 때면 주로 가평의 캠핑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죽음과 맞닥뜨렸던 첫 캠핑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가라앉음은 끝없는 심해가 아닌, 바닥이 있는 안전한 수영장 같았다.
더 깊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마음의 바닥에 닿으면, 마치 수영장 바닥을 힘껏 차고 올라오듯 다시 나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때로는 마음속 고민이 들불처럼 일어나 숲을 태우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주변에 나무는 많았고, 캠핑하는 동안 한 그루씩 마음에 심으면 되었다. 가평의 캠핑장에서 나는 자신을 마주 보고 치유하는 방법을 배웠다.
마음이 편안하고 기쁠 때면 안산의 캠핑장을 찾았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시간이 흐르며 그 소리에 타이르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뒤섞여 석양과 함께 붉게 타올랐다. 이곳은 가족 단위 캠퍼들이 많아 혼자 와도 외롭지 않았다. 때로는 옆 사이트 가족들에게 과자나 과일을 받기도 했다.
낯선 이의 호의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족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진 이들이 서해처럼 너그럽게 베푸는 것이리라. 이런 경험들 덕에 나 역시 과자나 과일을 넉넉히 사서 이웃 사이트와 나누게 되었다. 안산 캠핑장에서 나는 기쁨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가평의 숲과 안산의 바다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캠핑장이 나의 '월든'이 되었다. 갑갑하고 따분하며 때론 화가 나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굳어갈 때면, 캠핑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숲과 바다는 이제 내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이 되었다.
힘이 들 때마다 캠핑에서 찍은 자연의 풍경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 보면 마음속 요동치던 파도가 잔잔히 가라앉았다. 소로가 말했듯이, 자연이 주는 기쁨과 여유로움은 나에게 힘든 회사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로는 회사 생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직과 이별 같은 개인적인 시련들도 나를 지치게 했다.
잦은 이직은 게임 업계 특성이었다. 회사 단위가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이직의 원인이었다. 2년 전 프로젝트를 옮기면서 이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회사에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 때였다. 이번 이직에서 나는 큰 변화를 결심했다.
기존의 게임 시스템 기획자 직군을 잠시 접어두고, 게임 테크니컬 기획자로 직군을 전향한 것이다. 해당 직군은 직접적인 게임 기획 대신, 게임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획에 기술적 도움을 주는 역할이었다. 낯선 분야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컸다. 이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결정일지, 그리고 이에 따라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걱정되었다.
이직이 확정되자, 이지러지는 마음을 정리하고자 강원도 평창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를 타고 둔내 방향으로 가다 보니 태기산 계곡 근처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고, 계곡 양옆으로는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단풍의 붉은 빛이 계곡물에 반사되어 물조차 붉게 물들인 듯했다. 나무 데크(Deck) 위에 텐트를 설치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나의 선택을 믿는다"라는 말이 조심스레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의 아픔은 여름밤의 불꽃놀이와 같았다. 순식간에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 찰나의 폭발은 가슴을 뒤흔들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별의 횟수와 고통 사이에는 관계가 없는 듯했다. 매번 겪을 때마다 아픔이 새롭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아무렇지 않게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상태에 도달하면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 온통 머릿속은 이별 당시의 장면들로 가득 찼고, 후회의 파도가 밀려와 나를 덮쳤다. 그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몸이라도 일단 대피하자는 심정으로 급하게 회사에 휴가를 냈다. 멀리 가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서울 근교인 경기도 고양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평택 파주 고속도로 문산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서삼릉에 위치한 캠핑장에 도착하게 된다. 데크 주변으로 수령 높은 플라타너스들이 늘어서 있어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냈다. 부지가 넓다 보니 세면장과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꽤 되었지만, 그만큼 주변에 방해 요소 없이 고요히 머물 수 있었다.
텐트를 설치하고 나니 이별의 아픔을 곱씹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때 문득 시선을 돌리니 맞은편 텐트에서 한 사람이 분주히 수건으로 무언가를 털어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봄철 플라타너스가 뿜어내는 깃털 같은 종자들이었다. 그 사람은 텐트에 달라붙은 하얀 깃털들을 꼼꼼히 제거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캠핑장 전체에 마치 봄눈이 내리는 듯 무수한 깃털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날렸다. 내 텐트 위로 어느새 깃털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맞은편의 사람은 결국 털어내기를 포기한 듯, 이내 텐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깃털을 바라보며 이별의 아픔을 떠올렸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이 깃털처럼 기억은 내 마음에 들러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손에 날아온 깃털 하나를 집어 들어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잠시 후, 나는 그 깃털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시간이 흐르면 주머니 속 깃털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소로는 '자연의 고요 속에서 자신의 내면 소리를 들으며 삶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이것이었다. 캠핑장에서의 경험은 인생의 시련과 상실감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섰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되새기고 내면의 힘을 회복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자연은 부모님을 닮아서 나를 따뜻하게 보살폈다. 지친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면, 부모님의 얼굴과 함께 어김없이 캠핑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로의 '월든'처럼, 이 장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 공간은 이직의 불안과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게 해준 치유의 장소였다.
+ 계절이 선물하는 풍경들 속으로,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