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분갈이

안녕 '식물이들'

by 책뚫기

우리 집에는 총 네 마리의 '식물이들'이 산다. 청년일 때 데려온 행복나무, 꼬물이 때 데려온 고무나무, 산데리아, 싱고니움이다. 건장할 때 데려온 행복나무는 자신의 화분에 적응한 듯 더 이상 크지도, 더 이상 작아지지도 않은 채 몇 년을 함께 했다. 하지만 꼬물이였던 고무나무, 산데리아, 싱고니움은 달랐다.

산데리아, 싱고니움은 무럭무럭 자랐다. 고무나무는 처음부터 애를 썩였다. 잘못 입양한 탓인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갔다. 결국 10cm도 안 되는 얇고 짧은 줄기에 잎이 두 개 남았다. 고무나무는 그 마저도 축 늘어뜨려 화분 가장자리에 올려두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툭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해가 더 드는 곳으로 옮겨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옮겨보았다. 마침내 축 쳐졌던 잎을 들어 올려 화분 가장자리에서 떨어뜨리던 날,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웠던 지. 그때를 상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KakaoTalk_20211017_191043649.jpg 왼쪽부터 고무나무, 싱고니움, 산데리아, 행복나무

기쁨도 잠시, 무럭무럭 자라는 고무나무, 산데리아, 싱고니움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건강을 되찾은 고무나무는 죽음의 문턱에서 서둘러 멀어지려는 듯 순식간에 몇 개의 잎을 더 틔웠다. 처음으로 분갈이를 하던 날 산데리아와 싱고니움에게는 새 화분을 주고, 고무나무에게는 산데리아의 화분을 물려주었다. 내 생애 첫 분갈이였기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식물이들'은 큰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고무나무.png 싱고니움의 화분을 물려받은 고무나무


점차 식물들의 성장이 더뎌졌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식물이들'의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물이들'의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부족한가 싶어 물도 더 주고, 환기도 잘 시켜주었다. 괜찮은 듯싶었는데, 특히 행복나무의 잎들이 너무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물 영양제를 사다 꽂아주기도 했지만, 행복나무는 여전히 잎을 떨어뜨렸다.

죽어가는 행복나무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멍이었다. 그때 날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나와 행복나무 사이를 방해했다. "짝!" 본능적인 박수. 내 손바닥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찍혔다. 나는 다시 행복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또 한 번 "짝!" 또 하나의 검은 점이 생겼다. 묘한 위화감. '식물이들' 주변을 맴도는 아주 작은 검은 점. 너무너무 작은 점. "뭐야?!"

행복나무의 잎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유독 노란 반점이 많이 생긴 잎들이 눈에 띄었다. 잎을 뒤집어 뒷면을 보았다. "으악!" 무수히 많은 노란 알, 찐득찐득한 액체, "벌레다!" 나는 곧장 인터넷을 뒤졌다.

알은 행복나무 전체에 퍼져 있었다. 알이 너무 많은 가지는 통으로 잘라내었다. 그렇다고 전부 자를 수는 없어서, 젓가락에 테이프를 감아 일일이 알을 떼어내었다. 노란 알도, 정체모를 검은 점들도, 찐득찐득한 액체도 모두 떼어내었다. 거의 뜯어내다시피 했다. 싱고니움도, 산데리아도, 고무나무도 그날은 테이프 샤워를 피하지 못했다.





식물이란 참 정직하다. 벌레가 사라지자 다시 무럭무럭 성장했다. 행복나무도 예전의 풍성함을 금방 되찾았다. 나는 싱고니움, 산데리아, 고무나무를 위해 또다시 새로운 화분을 준비했다. 두 번째 분갈이,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자유롭길 바라는 기도였다. 그리고 얼마간, 내 기도는 이루어지는 듯했다.

"짝!" 내 손바닥에 찍힌 작은 검은 점 하나. 이번에는 곧장 행복나무의 잎 뒤를 살폈다. "아오...! 그만 좀!" 그 녀석들이었다. 곧장 젓가락에 테이프를 두르고, 잎에 붙은 알과 흔적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이번에는 해충박멸제인가 뭔가를 사서 잎과 흙에 충분히 뿌렸다. 내 마음이 시원해질 때까지 뿌렸으니 충분히를 넘어 과도하게 뿌린 듯하다. 그 뒤로도 조금만 무신경하면 벌레가, 신경을 쓰면 식물이 자라기를 반복했다. 그때는 몰랐다. 새로운 흙 안에 새로운 생명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분갈이를 위해 새로 산 흙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사용하는 팁이 있다는 걸.


꾸준한 관리한 덕에 지금은 벌레보다 식물이 잘 자랐다. 다만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자유롭길 바라는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싱고니움, 산데리아, 고무나무가 새 집을 달라고, 답답하다고, 자유롭지 않다고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다. 성장하면 더 큰 집을 달라하고, 성장을 멈추면 죽음의 길로 가는 '식물이들'.


'이번에 새 집 주면, 얼마 안 가 또 달라고 하겠지?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죽을 테고......'


싱고니움, 산데리아, 고무나무의 아우성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달 뒤면 담박이(태명)가 태어나는데, '식물이들'에게 더 정성을 쏟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 '식물이들'을 데려온 장본인,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 '식물이들'...... 자연으로 돌려보낼까?"


"응? 왜 그래? ㅠㅠ"


"주말에 할아버지 시골집에 갈래? 마지막 분갈이 해주자"


지난 주말, 나는 와이프와 할아버지의 시골집에 다녀왔다. 세 마리의 '식물이들'의 마지막 분갈이를 해주었다. 행복나무만 집에 남았다. 이번에는 아주아주 큰 화분, 대지에 심어주었다. 이미 '식물이'들의 뿌리는 화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자신들이 머문 화분의 모양을 띄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는 자유롭겠지? 다만 겨울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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