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만남
2016년 바람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늦가을 즈음, 직장 동료의 소개로 지금 부인을 처음 만났다. 나는 남자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치는 터라, 그녀의 키가 작다는 소식에 안도부터 했다. 그간 만나기도 전부터 작은 키 때문에 퇴짜 맞은 적이 있었던 터라 나보다 키가 작은 분이 있다는 소식에 괜스레 감사한 마음부터 올라왔다.
나는 늘 약속 시간에 여유 있게 도착하던 터라 그날도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약속 시간을 겨우 지켜 나타났고, 허겁지겁 걸어오는 모습에 다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소개팅 장소 주변에 주차할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생각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곳에 주차하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녀를 배웅하고자 그녀가 주차한 곳까지 함께 걸었는데, 30분은 족히 걸었던 기억이 난다.
키는 물론 외모도 출중하지 못한 나지만, 소개팅 자리에서는 그녀의 외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그런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냥 사람 한 명 만나보는 가벼운 자리라고 다짐했건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외모와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저울질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게 딱 내 수준이라, 속물스런 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녀는 참 순수해 보였다. 첫 만남 때 나눈 대화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와의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눈을 바라보았고, 내 말에 부드럽게 반응하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말하였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호의, 그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만났다. 그러다 하루는 내 차를 타고 근교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그 당시 나는 십 년이 넘은 소형차 '클릭'을 몰고 다녔다. 내 차는 십 년 이상의 세월을 고스란히 품어 여기저기 긁혀 녹슬기도 했고, 에어컨을 켜면 속도가 느려져 내 차에는 에어컨 브레이크가 있다고 장난 삼아 말하곤 했다. 더욱이 엔진 소음이 차내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와 고속도로에서 옆 사람과 대화하려면 큰 소리를 내야 했다.
그 당시 친구들과 나는 '차를 사면 결혼이 10년 늦어지고, 차를 안 사면 결혼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그녀와 내 차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니, 우스갯소리가 내 마음의 소리가 되었다.
'그녀가 내 차를 차라고 생각할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연스레 차에 탔고, 기분 좋게 나들이를 즐겼다. 나들이 내내 그녀는 그저 나와 있었고, '오래된 소형차를 소유한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는 내가 어떤 차를 타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따지는 속물스런 나와는 참 다르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가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 만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이제는 슬슬 우리의 관계를 한번 정리할 때가 된 거 같아서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만나면서, 이성으로서의 매력도 느꼈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너무 느껴져서요. 정말 좋은 분이신 거 같고, 그래서, 저는 정식으로 더 만나고 싶은데... 어떠세요?"
사실 차일 거라 예상하고 건넨 말이었다. 소개팅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소개팅을 하기도 전에 까이고, 한 번 만나고 까이고, 여러 번 만나고 까였던 터라 그 당시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키도 작고, 외모도 별로고, 돈도 없고, 나 스스로도 소개팅에서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자기 인식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배려 깊은 사람이기에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말하리라 예상했다. 거절하더라도 나를 배려하여 거절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녀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잠깐의 서론과 그러자는 답이 돌아왔다.
한참 후에야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다. 세상에 고백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냐는 투정이었다. 내 고백을 듣고는 '내가 이성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소린가? 그런데 더 만나자고?'란 생각이 절로 들었단다. 어이가 없었고, 괜스레 오기가 생기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고백을 듣고는 심장이 뛰었다고 한다. 두근두근 울리는 심장이 그녀에게 그러자는 답을 하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