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 수 없는 운명에 흩날리며 이링공뎌링공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물론 운명에 맞서는 자들도 있다. 그런 특별하고 고집 세고 체력 좋은 자를 특별히 부르는 단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영웅이다. 오 히어로즈시여. - 60P.
이야기에 만약에를 잔뜩 붙여 보지만, 만약에는 아무래도 잘 찢어지는 스티커 같다. 운명을 붙이기에 그건 너무 약하다. - 88P.
빌어먹을 경력 건더기를 채워 나에게 다음이 허락된다면, 다음이란 것이 온다면, 다음 회사에 간다면, 그때는 꼭 싸움도 경쟁도 없는 것을 만들겠노라고. - 156P.
#키코게임즈 #심민아 #소설
아는 분께서 유니티를 알려주고 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정말 간단한 수준이지만, 난 그것도 잘 못 따라가고 그냥 듣고만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가르쳐주고 있는 분이 들으면 굉장히 열불이 터질 테지만, 그래도 신기하긴 했다. 넣는 대로 바뀌는 모습들이.
그런 와중에 이 소설을 타이밍 좋게 읽었다. 표지부터 무언가를 받드는 광기 절은 버섯들이. 귀여웠다. 소설의 이야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지만, 게임 회사에 다니게 된 ‘유라’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자마자 와닿았던 건, 초장부터 출근의 싫증을 표현한 순간들이었다. 하필 출근하는 중에 읽어서.
그렇게 ‘유라’의 고달픈 게임 회사 적응기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특히 프린세스 메이커)를 보며 사실은 그래도 게임에 애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확실히 다른 점을 하나 알았다. 유라는 실천을 하고, 나는 실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조금 뒤에.
게임 회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옛날에는 캐주얼한 복장을 한 사람들의 활기 넘치게 기획하면서 만들고 성장하는 RPG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묘하게 개발자들의 모습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적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잡아야 하는 건 몹이 아니라 버그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였던 유라가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의지를 가진 순간. ‘제작자’가 아닌 ‘예술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지극히 평화롭고, 아무도 경쟁하지 않는 경쟁시장에서는 도태될 게임이고, 자신도 문학스러운 게임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명확히 안 순간, 인물의 성장이 눈에 띄게 보이는 것 같았다. 맹렬히 달려가니까. 광기 넘치게. 그런 취미를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의 창조를 시작하는 예술가이니. 아 이러니까 예술가들 보고 살짝 미쳤다고 하는 건가?
요즘 방치형 RPG 게임들이 유행하는데, 현실과 다르게 성장이 아주 쉽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면 더 쉬워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인생은 방치형 RPG가 아니다. 스펙, 스킬은 똑같이 중요하겠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한 노력은 보통 방치만으로 되지는 않으니까.
내가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달려 나갈 광기와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 방식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고 혼자 헛생각하고 있을 때, 소설 속 유라가 만들 그 문학적인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핑계다. 글을 그렇게 써보고 싶다. 잘. 하지만 초보 창조(작)자들은 아직 어리숙하니, 계속 버그도 겪고 고쳐보고 해야겠지.
어쩌면 지겨운 회사생활이라는 게임을 살짝 접고, 본인의 창작생활이라는 게임을 펼쳐보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퇴사 권유가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뭐든 해보라고. 광기, 끼 넘치게.
참고로 내가 하는 게임은 쿠키런. 근데 얘네도 싸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