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핑계로 내가 잘 놀고먹었다
어버이날| 어버이날 핑계로 내가 잘 놀고먹었다
특별한 날이나 내가 시간 나는 날에 외식을 한다. 두 분 모두 뭐든 다 좋다고 하지만 재차 물으면 아빠는 항상 이런저런 것 먹을 것을 명확하게 지정하시고 엄마는 먹고픈 게 없다고 아빠 먹고 싶다는 것 먹으러 가자 하신다. 그래서 매년 어버이날엔 장어러버 아빠 덕분에 장어를 먹는다.
어릴 적엔 생선을 입에도 안 댔는데 이제 나는 회와 생선구이러버가 되었지만 몇 점만 먹어도 느끼한 장어는 예외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원래 고창 ‘해주가든’에 갈 생각이었는데 작년에 갔을 때 철수세미가 나오기도 했고 전날 잠을 잘 못 자 피곤할 것 같아 급하게 검색을 해 전주 송천동에 있는 ‘사선대 또랑장어’에 갔다.
급하게 찾은 것치곤 생각보다 맛있었고 양념은 다시 가서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나 만큼이나 장어에 노진심인 엄마는 명이나물, 부추무침 같은 반찬이 있으니 좋다며 잘 드셨고 찐 장어러버인 아빠도 양념이 맛난 지 소금보다 양념을 자꾸 드셨다. 나도 평소보다 선점해서 세 명이서 1키로(세 마리) 먹고 한 마리 더 추가해서 먹었다. 물론 물냉, 비냉, 누룽지로 식사도 야무지게 했다.
배가 너무 불러 산책 삼아 덕진공원에 갔다. 예전에 종종 갔던 것 같은데 혁신도시로 이사하고부터는 거리가 멀어 그런가 쉽사리 찾지 않게 됐다. 그러다 이번에 ‘전주책쾌’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고 방문을 하다 보니 공간도 좋도 정이 가서 자꾸만 찾게 되는 듯하다.
평소에도 나는 길을 걷다 마주하게 되는 꽃과 나무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식물은 땅에 몸을 지탱하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재빠르고 명확하게 제 모습을 변화한다. 나는 그런 식물의 특징을 애정한다. 이러한 나의 특징은 시골에서 자라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엄마빠의 영향도 있는 듯했다. 산책을 하는 동안 만나는 각종 나무들에 관심을 가지며 이건 뭐고, 이건 예쁘고, 이건 별로고 제각각 내 맘대로 품평회에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이팝나무랑 비슷하게 생겼으나 이팝나무는 아닌 듯한 나무를 만나 아빠에게 아시냐 물었다. 아빠는 모른다며 이름표도 없으니 ‘안이팝나무’라고 하자 하셨다. 아빠는 종종 이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아재 개그축에도 못 낄 만한 말장난을 던지곤 하신다. 이밖에도 화장실에 갔다 안 들어오시고 맞은편 건물(동학혁명기념관)에 서 계시길래 왜 안 들어오고 서 계시냐 하니 전봉준을 한번 만나보려고 했단다. (사실은 엄마랑 내가 카페에서 나온다고 한 줄 알고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빠의 레퍼토리가 이런 식이라면 엄마의 레퍼토리는 ‘나 이렇게 살았다’의 다양한 버전이다.
시집오고부터 시부모님 대신 층층이 어르신인 아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울 엄마는 말도 못 하게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쁜 맘먹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살며,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살림을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남한테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문제 상황에 대한 대책 강구도 민첩하지 못한 아빠 덕분에 남한테 아쉬운 소리도, 문제 해결도 엄마의 몫이었다. 이러한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 남은 건 아마도 남부끄럽지 않은 당당함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영향으로 엄마는 종종 ‘그 바쁜 와중에도, 그 어려운 가운데서’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자주 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맥락이다.
오늘의 주제는 ‘아빠의 바지’였다. 원래도 흘림이 많은 우리 아빠는 나이가 들고부터 그 상태가 좀 더 심해져 심각 수준에 이르렀다. 새 바지를 입고 멀쩡하게 벗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바지가 여러 벌임에도 항상 입을 바지가 없게 되는 대략 난감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오늘은 어쩐 일로 묻은 게 없느냐 물으니 이번에 언니가 작업복 바지로 세 벌을 샀는데 작업복 바지라도 후줄근하면 보기가 싫으니 다림질을 했고 그 바지를 입은 것이라 했다. 그리곤 이어서 자신은 이때껏 아무리 바빠도 아빠가 추접스럽지 않도록 저렴한 옷이라도 옷을 멀끔하게 입혔다는 이야길 하셨다.
오늘 하루 엄마빠 이야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많은 부분이 엄마빠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제각각 자기 색깔 확고한 엄마빠의 특징이나 성향이 좋았다. 또 그리고 자식이 부모의 특징이나 성향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큰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부모의 특징이나 성향이 객관적으로 어떠한가 와 별개의 문제이며, 대상이 부모가 아닌 친구나 연인, 스승, 지인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며 무엇이라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취하는 일이나 과정 안에서 우리는 좋은 힘을 얻게 되고 그건 마음의 영양제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너무 좋았는데 이렇게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개인의 특성이나 역량의 문제이기도 하나 대체로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조금 맥이 풀렸다. 내 마음이 꽃밭이어야 주변의 꽃도 예쁘게 보이지, 내 마음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유리조각처럼 뾰족한데 주변의 것들이 좋게 보일리 없다. 물론 모든 것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그건 좀 가혹하게 여겨져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간에 덕진공원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오리 가족 덕분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오리 가족을 보고 칠십다섯 아빠는 “오리오리 꽥꽥” 하시고 서른아홉 딸내미는 동영상 촬영하면서도 연신 “어머나 귀여워!”를 외쳐대고, 칠십하나 엄마는 할머니가 최고라는 말괄량이 두 손녀에게 보내준다고 재빠르게 폰을 꺼내 순간 포착에 성공했다. 바쁜 와중에 어버이날 핑계로 일요일에 이어 월요일도 놀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매일 같이 ‘이동동’으로 살다 (체감상) 오래간만에 여유를 부리니 기분이 째지고 낮술 먹은 것마냥 인생 뭐 있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싶다.
동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질 때 꺼내보려고 기분 좋은 날 길게 길게 늘어 쓴 어버이날 시작해 스승의 날 마무리 짓는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