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Sep 20. 2024

시집이라..

이 우울한 마음을 사람으로 달래긴 어려울 테니

지난 추석 때는 속 시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속이 시끄러우니 갑자기 멀쩡하던 다리도 아프고, 여러모로 즐겁지 않은 추석이었어요. 만사가 싫고 번잡스러워 토요일 오후에 집 앞 도서관에 갔습니다. 신간도서 쪽으로 가니 시집이 있더라고요. 시집이라...


시를 읽은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시는 김경주 시인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인데요. 예전에 어디서 읽었는 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폭력성이 높은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개씩 시를 읽게 했더니 폭력성이 많이 수그러들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거든요. 이 우울한 마음을 사람으로 달래기는 어려울 테니 시로 한번 달래 보자 싶어 읽어봤습니다.


기도시집인데, 기도와는 동떨어진 내용 같지만 한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조은 시인의 동질(同質)이라는 시인데, 저는 아직 이런 은은한 따뜻함을 기대하고 좋아하는 사람인 듯합니다.


동질(同質)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생명처럼 붙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앉은자리에서 시집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시라는 게 압축된 글이다 보니 생각을 곱씹게 되고, 하필이면 또 기도집을 골라서 그런지 세상 사람들 다 비슷한 고민으로 살아간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특별한 삶 아닌 이상, 다 순차적으로 비슷하게 사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어요.


이 시집인데요, 여러 가지 시를 엮은 거라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