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그렇게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주인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들은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볼 때마다 어찌나 반갑던지. 한 명은 2년 전에 만났음에도 어제 본 것 같고, 한 명은 1년 전에 만났음에도 어제 본 것 같더군요. 저를 빼면 이 두 명은 거의 3년 만에 만난다는데 어제 본 것처럼 편해 보였어요.
서로의 이야기는 어느새 넋두리가 되었고, 넋두리는 이어서 분노가 되고, 자조와 조롱이 되고. 각양각색으로 변하다 공기 중에 사라졌어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부유물처럼 떠다니다 사라졌습니다. 고민도, 걱정거리도, 막상 타인에게 늘어놓고 보니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최근에 인간관계로 속 끓던 저도, 손짓 발짓 다하면서 털어놓다 보니 속이 다 시원한 거예요.
그런데 언니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는 적당한 대가리 꽃밭이 좋더라." (의미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비속어를 조금 썼습니다.) 그런데 저도 '대가리 꽃밭' 좋아하거든요. 다른 이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당한 대가리 꽃밭'은 우리에게 필요한 걸지도 몰라요.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처럼 무조건 긍정적이어도 문제이지만,(전 오히려 조이가 제가 안 좋게 생각하는 답 없는 대가리 꽃밭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염세적으로, 부정적으로 사느니 적당하게 내 머릿속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언니도 똑같은 이유로 대가리 꽃밭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홍진경 씨가 그랬던가요?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나는 고민거리 하나 없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요. 제가 그렇습니다. 갑자기 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요. 저는 자기 전에 생각을 차단합니다. 저는 저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 잘 압니다. 생각을 하면 답도 없이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왜 사나 싶어 눈물이 나고, 울다 보면 새벽이 되거든요. 그럼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생각을 차단해 버립니다. 저는 이미 대가리 꽃밭 상태로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너가 그렇게 살아서 지금 이런 거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부들부들..)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남에게 보이는 그림 같은 삶도 부럽지만... 네, 솔직히 굉장히 부럽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편한 삶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하튼 이 글은 적당한 수준의- 대가리 꽃밭 만세를 외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