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갔다. 예배당 한편 의자에 앉았다. 입구에서 받아들었던 주보 옆에 내려두고, 짐을 풀었다. 찬양 한곡 하고 광고 시간. 옆에 뒀던 주보를 들어서 펼쳤다. 설명도 해주지만 주보에도 나오니까. 내용을 훑어 내려가다가 교우 소식에 시선이 머물렀다. 7월 14일.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한 집사의 엄마는 돌아가셨다. 한 가정에는 기쁜 소식이, 다른 가정에는 슬픈 소식이 있었다. 출산과 장례라는 글씨가 순간적으로 크게 보였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 반대되는 것이 같은 문단 안에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반대되는 것도 아닌 거 같다. 연결되어 있는 거였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으니까.
상반되는 것이 공존할 때가 있다. 채니를 임신했을 때였다. 임신 소식을 알고 기뻤다. 서른여섯에 결혼했다. 다들 결혼이 늦어 아이부터 가지라 권했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생기겠거니 했다. 서른여덟 살. 임신했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긴 거라 기뻤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출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임신했다는 기쁨도 잠시. 퇴사하기로 했다. 당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이전회사에서 퇴사를 결정할 때, 상사는 말렸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혹시 아이라도 임신하게 되면, 그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신생회사였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서른아홉에 낳아야 하는 아이. 두 시간이 넘는 출근길. 심한 입덧. 출산 후 아이 양육 등. 그만둬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쉬웠다. 유월 중순에 임신 사실을 알았고, 칠월 말 퇴사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막상 퇴사를 할 때는 좋았다. 고민이 있었지만. 태교에도 도움 되고 더 낫겠다 싶었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일 쉬어본 적 없다. 회사 일로 바쁘게만 살다, 갑자기 찾아온 휴식.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소파에 드러누워 하루 종일 있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나기도 하고. 퇴사하기 전에는 카페에도 가서 책도 읽고, 친구들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이런저런 계획을 그렸었는데 말이다. 계획한 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다. 몸에 힘이 빠졌다. 카페에 갈 생각도 못 했다. 이제 뭐하고 살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육아하는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날마다 다르다. 말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재미를 붙였다. 머릿속에 있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가 보다. 매일 사용하는 단어가 늘어나고, 자기표현도 곧잘 한다. 이제는 혼자서도 조금 놀 수 있다. 장난감을 세워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보고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질 때 있다.
힘들다. 체력적으로. 내가 채니보다 먼저 잠들기 일쑤다. 채니가 이것만 더 하고 놀자고 할 때도, 엄마가 피곤해서 못 놀겠다고 말할 때 있다. 돌아서면 어질러져 있는 거실. 장난감 무더기들 속에서 정리하다가 하루가 다 갈 때도 있고. 말이 통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힘이 빠지고.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면은 있다. 그래서 행복할 때는 슬펐을 때를 생각하고, 슬펐을 때는 다시 행복이 올 것을 생각해야 하는가 보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