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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nx로가는 Q44 버스 안에서

조직을 알아가는 것은 때가 묻어가는 과정이다. 모를 때에는 순수하다

by 보표
pexels-elijah-o'donnell-3359189.jpg 출처 : Person Walking In Front Of A Bus by Pexel


사회 초년생이 맞이했던 폭설이 내리던 뉴욕의 그날 새벽


미국에서 살다 보면 매스컴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떠드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폭설이다. 한국에서는 눈이 많이 내리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정도로 뉴스를 전달한다면 미국은 정말 내일 지구 종말이 올 것처럼, 내가 있는 도시가 지구의 등껍질로 꺼져버릴 것처럼 마치 컴퓨터 Turn Off 되는 것처럼 뉴스를 듣는 모두를 겁쟁이라도 만들 작정의 텐션으로 아나운서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영어로 나를 더 겁먹게 했다. 그만큼 미국은 눈이 많이 오면 정말 많이 오고 모든 것이 묶여버리기도 하는데, 그날도 그러했다. 뉴스에서는 연신 내일 눈이 많이 내릴 것이라 경고했고, 대중교통도 끊길지 모른다고 연신 떠들어 댔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눈 따위에게 핑계를 대기도 싫고, 괜히 잔소리 듣기도 싫고, 당당하고 싶어서 초년생들이 늘 그러하듯 출근은 꼭 정시에 하고 말 거라는 굳은 마음을 먹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큰 조직에서 아무도 신입에게 그만큼의 관심과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 하나 빠진 것을 눈치나 채면 다행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회사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어찌 되었든 그날의 나는 무리하게 갖지 않아도 될 굳은 마음가짐으로 미드나잇 즈음에 내일은 꼭... 늦지 않을 거야... 일찍 일어나야 해 라며 읊조리며 잠이 들었고 내가 어렸을 시절 소풍 전날 잠들기 전에 사용했던 이 마법의 주문은 20대의 나에게도 그대로 찾아와 4시간 정도만에 내 눈꺼풀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출근 준비를 서두르며 양말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로 히팅으로 가득 찬 내방의 창문(미국 특유의 창문은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형식인데 특히나 아침에 일어나서 손에 힘이 없을 때 올리기가 더 힘들다)을 열었고 새벽 4시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휘몰아치고 있었고, 모든 것을 삼킬듯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오늘 늦지 않을 수 있을까?"라며 내 걱정은 그렇게 겨울 입김이 되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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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nx로 가는 Q44 버스 안에서


내가 사는 뉴욕의 Queens에서 Bronx로 가는 방법은 뚜벅이(미국에서 차 없이 생활하는 사람) 신입이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Q44라는 이름의 긴 버스를 타야 했는데 이 버스는 2개의 버스 몸통을 마치 굼벵이 주름처럼 생긴 주름으로 이은 긴 허리의 버스인데, 막상 타보면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태우려고 한 흔적이 보이는 오래된 수송선 혹은 오래된 넉넉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최대한 늦지 않으려는 신입의 마음은 뜨거웠다. 우산도 소용없는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그 새벽에 나는 Q44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첫 차를 놓치면 버스가 더 이상 안 다닐지 몰라"라는 생각과 함께 달렸다. 그때 나를 쉬지 않고 10여분을 달리게 했던 연료는 신입의 패기였으며, 눈이 쌓인 거리를 한 번의 삐끗거림도 없이 똑바로 달릴 수 있게 했던 터질듯한 엔진은 조직을 몰랐던,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했던 신입 나 자신이었다. 결국 나는 첫차를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탈 수 있었고, 출근에 지장이 없었다. 그날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늦지 않게 출근한 사람은 200여 명의 직원 중에 나 밖에 없었고, 그만큼의 대혼란이었는데 어떻게 출근할 수 있었냐며 많은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전화가 걸려왔고, 회사 대표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내가 탄 Q44가 그날의 첫차이자 마지막 차였다. 교통은 끊겼다.




아는 것은 힘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눈 오는 날 버스를 향해서 무턱대고 달려갔던, 그 시절의 나처럼 누구에게나 패기 있던 신입의 시절은 있다. 또 누구에게나 반드시 신입의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인데, 아는 것이 힘인 것만큼 조직을 점점 알아가면서 신입의 시절은 지나가고 뱀이 탈피를 하는 것처럼 신입은 탈피를 하여 거듭난다. 신입의 탈피는 멋지게 표현하면 조직에 걸맞은 인물이 되면서 탈피를 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좀 다르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신입의 탈피는 반드시 떼로 순수함의 껍질을 벗겨내면서 탈피한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샌가 꼰대로 불리게 되고, 내 안에 세상이 모든 세상인 것 같은 동굴 속의 한쪽 면만을 마주한 괴물이 되어간다. 오만하기 그지없고, 답은 정해놓고 오로지 내 생각이 맞는지 거듭 물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것도 이쯤은 정도야 라면서, 넘겨버리는 역겨운 한쪽면만 볼 수 있는 검은 외눈박이 괴물이 되어간다. 어느 회사에 건 이런 외눈박이 괴물들은 있는데, 회사에서 저런 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렇게 되어버리는 게 맞는 건지? 저 사람은 몇 번의 탈피를 하여 저렇게 되었을지? 탈피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피 토하게 하지 않았을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다 저런 모습의 형태로 탈피를 해야 하는 건지? 가끔 믿고 싶었던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도 실체가 벗겨지면 썩을 대로 썩어 탈피를 적어도 100번도 더 했을 검은 외눈박이 괴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 사회가 씁쓸하다.


그러니 지금도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 모든 곳의 신입들이여, 당신이 알아가는 그 과정에서 당신과 결이 맞지 않는다면, 고개가 자꾸만 저어진다면, 내가 그 괴물이 도저히 될 수 없다면 억지로 괴물의 옷을 입어 내 빛나는 순수의 갑옷을 희생하지 말아라. 아는 것은 힘이지만, 아는 것은 더러울 수도 있다. 모르는 것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한번 알게 되면 절대 모르는 때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 떼가 묻어가며 아는 것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는 그 아닌 것을 억지로 얻기 위해 당신의 순수, 건강, 사랑, 아름다움을 희생하지 말아라. 차라리 당신에게 결이 맞는 곳으로 걸어가라. 용기라는 재료로 당신이라는 원석을 더 빛나게 만들어라.


눈폭풍의 Q44 버스 출근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눈폭풍이 오는 날 새벽 4시부터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었다. 외눈박이가 마주한 동굴에서 나온 지금 글을 쓰며 그 시절을 돌이키며 순수가 빛나던 나를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쓸개를 제거한 이 이야기로부터 한편 한편 시간을 거슬러 뉴욕에서의 이민자로서의 회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서 저처럼 젊은 날에 무엇을 이루기 위해 쓸개 혹은 그 무엇이 되었든 희생하신 많은 분들이 있으실 텐데 그분들의 상실을 공감하며 응원을 드리며, 아직 쓸개처럼 삶에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게는 잘 버티실 수 있도록 글로써 심심한 에너지를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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