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그녀의 사정
직장 생활하면서 직원과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사연 한 보따리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뉴욕처럼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종, 종교, 성향의 직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때때로 친구처럼, 여동생처럼, 형처럼, 가족처럼, 한편으로는 원수처럼도 다가온다. 내게는 시간이 많이 흘러도 유독 생각나는 직원들이 있는데 지갑 속에 $100을 볼 때면 Nelly라는 직원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뽀글뽀글 금발머리에 얼굴은 적당히 까맣고 키는 조그마했던 Nelly, 항상 웃을 때 하얀 윗니가 드러나던 그녀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써 22살에 3살 아들을 둔 싱글맘이었고 항상 활기차고 밝은 직원이었다. 그녀는 고객 서비스를 담당했는데 고객들이 항상 친절하다고 할 정도로 평이 좋은 직원이었고 일을 잘하는 직원이다 보니, 나와의 관계도 원만할 수밖에 없었다.
Nelly는 싱글맘으로써 정말 열심히 사는 직원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간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그런 직원이었다. 종종 점심시간에 아들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여주고는 했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아들 사진을 보여줄 때면 나는 내가 기르던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서로 행복해하던 그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그만큼 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하던 직원이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고객 클레임 건으로 Nelly를 찾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나름 긴급했던 건이었는데, 우선 고객에게 다시 전화를 줄 것을 약속하고 고객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Nelly를 찾았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으나, 딱 한 군데 안 찾아본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문 앞 쪽으로 걸어가니 여자 울음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노크를 하였고 그녀에게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부터 물어봤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 그녀가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해줘도 나는 할 말이 없었고, 무슨 말을 해줘도 어떤 말을 그녀에게 해줘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오히려 나의 서투른 위로가 무성의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순간 그녀는 문을 열고 나왔고 대화를 하자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핸드폰을 아들이 화장실에 빠뜨렸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녀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듣고 나서 나는 이게 무슨 그렇게 큰일인가 싶었지만 이어서 그녀는 "나는 지금 핸드폰 살 돈이 없어, 사실은 중요한 곳 면접을 본 곳이 있어 그곳의 연락을 내일까지 기다리는 중이야" "그곳에 합격하면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을 그만둬야 할 거야, 나는 내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직장이 필요해" "나는 그 일이 꼭 필요해" 라며 어떻게 보면 솔직하게 그녀는 이야기해줬고, 한편으로는 뻔뻔하게 이야기해줬다. 직장상사에게 다른 곳 면접을 봤고 그곳에서 연락이 와야 하는데 핸드폰이 현재 고장 나서 연락을 받을 수가 없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그녀에게 화장실에서 울만큼 절망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핸드폰을 새로 하기 위해서 $100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번에 꼭 그곳에 합격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얼굴에는 아직 눈물자국이 있던 Nelly에게 내 비상금 $100을 건네주었고,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히 1주일 뒤에 그만두었다. 그녀는 그만둘 때 나에게 수첩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그 수첩에는 $100 지폐 한 장과 고맙다는 내용의 텍스트, 그리고 수첩 표지에 그림이 있었는데, 내가 키우던 고양이를 그렸다면서 수줍게 "그림 실력이 형편없지?" 라면서 건네주었다. Nelly는 그렇게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수첩을 보관하고 있다. 훗날 Nelly는 보라색 간호사 복장으로 나를 찾아왔고, 새로운 직장은 간호학원의 일이었고 그곳에서 일도 하면서 학원비도 충당하면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활짝 웃으면서 그날 정말 고마웠다고 다시 한번 나에게 마음을 전했다.
정말 어려울 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습니다. $100은 그 당시의 저에게는 좋은 곳에서 식사 한 끼 정도의 의미였지만 Nelly에게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소중한 값어치의 돈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나의 조금을 나눠서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아가서 그 사람의 꿈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정말 행복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종종 이런 선행을 베풀고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쓸개를 제거한 이 이야기로부터 한편 한편 시간을 거슬러 뉴욕에서의 이민자로서의 회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서 저처럼 젊은 날에 무엇을 이루기 위해 쓸개 혹은 그 무엇이 되었든 희생하신 많은 분들이 있으실 텐데 그분들의 상실을 공감하며 응원을 드리며, 아직 쓸개처럼 삶에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게는 잘 버티실 수 있도록 글로써 심심한 에너지를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