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Oct 14. 2021

시소

가을 타나 봐


가을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못한 9월 말 10월 초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부터 진짜 가을.

나는 매계 절 드라이브하며 바뀌는 나무색을 지켜보는 걸 참 좋아한다.

봄이면 새로 돋아난 초록잎에 나도 모르게 들뜨고 신이 났다가, 여름이면 나무색  겨를도 없이 신나게 놀고, 달리는 차창밖으로 나무색이 변하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스치며 가을 냄새를 풍기면 나는 가을을 탄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즐기느라 차창밖을  여유 없는 나날을 보내겠지.

계절에 날씨에 호르몬에 분위기에 지극히도 예민한 나.

그런 나를 알기에 이 계절을 이겨내려 일부러 밝은 노래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고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몸이 축축 처지고 뭘 해도 텐션이 오르지 않는다.

아, 또... 그 시기가 왔다.

그냥 재촉 없이 잔잔하게 지금의 나를 다독이고 기다려주어야만 하는 시기.


늘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자꾸만 흐르는 물을 거스르며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나를 꿈꾸며 재촉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즐기지 못하고. 그 어느 것 하나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빠지면 중간이 없는 타입이라 균형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 균형이라는 게 참 어렵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균형에 대해 생각하다 아이들 놀이터에 자리 잡은 시소가 떠올랐다.

긴 널빤지 양끝에 사람이 타고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타는 놀이기구. 시소.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이 시소와 같지 않을까.


인간의 감정도, 열정도, 행복도, 슬픔도.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고 영원한 것이 없다.

가득  오르고  비어 내리고를 반복하며 균형을 찾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네 인생.

제각기 다른 무게의 짐을 들고 어렵사리 균형을 찾은들 유지하기 어렵고, 영원 할리 없단 것도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왜 이토록 애쓰며 살고 있나.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며 가을 타는 티를 팍팍 내며 머리에 잡생각을 가득 채운다.


삶의 균형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건 둘째를 낳고 애둘육아에 치여 허덕이고 있던 어느 날 읽게 된 '균형 육아'라는 책이 처음이었다.

나의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인데.

내가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좌절했다.

그리고 균형을 찾기 위해 나는 나를 더 깊이 바라보아야 했다.

내 삶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제각기 다른, 누가 정해줄 수 없고, 원한다고 가질 수도 없는 삶의 요소들을 나 스스로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결국 내 몫이었다.

그때 정리한 나의 삶의 요소와 우선순위로 한동안 균형을 잘 이룬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때 그 정리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면서 변하고 또 변하고 중요도도 달라졌다.

다시 또 재정비할 시간이 다가왔구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나 스스로 나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만의 삶의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시소놀이를 즐기다 보면 어느 때는 살짝 오르고 어느 때는 또 살짝 내리며 찬찬히 균형을 잡아가는 나를 발견할 날이 오겠지.

그러다 보면 다시 인생의 시소놀이가 재밌고 즐거워지겠지.


당분간 온전히 나를 바라보며 나의 삶의 요소를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늙은 호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