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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Aug 12. 2021

나는 오늘 나에게 제한적 자유를 허한다.

현실적 자유와 비현실적 자유

새벽6시 알람이 세번이나 울렸지만 오늘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자체엄마방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루틴을 내려놓고 나편한대로 지낸지 2주째.

모든걸 내려놓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왠지모를 불안감과 불편감에 다 내려놓지도 못했다.

모닝페이지라 쓰고 배설이라 읽는 말도 안되는 글쓰기와 꾸역꾸역 헤드라인만이라도 읽어가는 신문은 도저히 내려놓지 못하고 이어왔다.

2주간 아이들이 기관에 맡겨진 시간동안 엄마의 자유를 충분히 누렸고 즐겼고 행복했다.

그리고 너무 놀아서 지치다는 생각이 들고, 잘 놀고와서 아이들과 만났는데 평소보다 더 힘들고 짜증이 나는 내게 놀라서  '아 이제 진짜 쉬어야겠구나' 싶어 어제는 진짜  하루종일 쇼파에 늘어져 쉬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오늘쯤엔 에너지가 다시 올라왔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아직도 헤매고있다.


힘겨운 등원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몸에 힘이없고 나도 모르게 자꾸 한숨을 내쉰다.

비가 와서 집안의 공기가 너무 습해서 그런 것 같아 집에오자마자 제습기를 틀었는데 습기와 함께 내게 남은 아주 작은 에너지까지 다 가져가버리는 것 같다.

가라앉는다는 말로는 부족한. 내 몸이 지구의 핵까지 까라앉아 버릴 것 같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10시부터 목글모가 있는 날인데 늘어지기만 할 수 없었다.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제일 좋아하는 컵에 히비스커스차를 우려내 자리에 앉았다.

20분남짓 남은 시간동안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아침에 못 쓴 모닝페이지를 써내려간다.

'오늘은 정말 하지않아도 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야지'

라고 반복해서 글을 써내려가다가 멈칫했다.

'하지 않아도 될 모든 것?'

나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 그대로 그냥 모든 것이라고 하지 못하고 왜 '하지 않아도 될 모든 것'이라는 제한을 두었을까.

나도 모르게 현타가 왔다. 세상에. 왜 내가 이런 제한을 둔 생각을 하는거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라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지만 내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 많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집안일을 모른 채 쉴 수 없고 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의 육아는 내게 쉴틈을 주지 않는다.


서른다섯. 진짜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내가 하고싶었던게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때때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정말 일해야지 생각할때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온전히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둘맘이 일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었던 일을 하려면 돈과 육아가 걸리고, 돈과 육아를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지도 못하고, 돈에 이끌려 일도 육아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은 배제하다보니 나는 7년째 경제적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도 없는 내가 정말 그 무엇도 하기 싫은 날.

하기싫은 걸 하지 않을 자유조차 없는 서른다섯의 나라니. 정말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또 생각의 끝을 따라가다보니 결국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하기싫은 많은 것을 매일 하며 살고 있겠지 싶었다.

정말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는건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그럼 어떻게 현실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내가 꿈꾸는 비현실적 자유는 누릴 수 없고, 그렇다고 자유를 포기할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제한적 자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두고 그 안에서 마음껏 누리는 자유'였다.

즉, 내가 오늘 모닝페이지에서 배설했던  '애들이 오기 전까지. 하지 않아도 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것' 이야 말로 현실적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왜 쉴 자유조차 없는 것인지에 대한 한탄을 할때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동안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야 말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자유를 누리는게 찐이다.


오늘은 정말 하원직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어야지.

그리고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평소보다 더 너그러워진 엄마의 모습으로 맞이해야지.

그리고 비가오든 눈이오든 바람이불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터로 향해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는 남편에게 '이번 주말에는 꼭 아빠의 자유시간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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