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12월호 주제는 '2024년을 돌아보며'입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이 생각나듯
어떤 문장은 그 문장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내 20대. 꿈의 문장으로 품었던 문장 중 하나는 가수 비의 인터뷰에서 만났다.
인터뷰에서 비는 뛰어난 실력으로 성공을 하기까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을 생각하며 진정성 있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1위를 하자.'가 아니라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는 그 마음가짐이 참 멋져 보였다.
막연하지만 나도 내 삶에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함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20대의 꿈 많던 나는 2024년 어느덧 서른여덟이 되었다.
2024년
대부분의 날들.
아이의 "엄마~"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우리 강아지, 엄마 강아지"하며 아이를 얼싸안고 하루를 시작했다.
도통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무얼 해먹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제철음식을 찾아가면서 장을 봤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는 어떤가 살펴 환기를 하고 "엄마 읽어줘~"하는 아이의 말에 수십 번도 넘게 같은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이가 할 줄 아는 말이 늘어날 때마다 크게 감탄했다.
몸과 마음이 고된 날엔 나도 모르게 내뱉은 잘못된 언행에 눈물 흘리며 미안해도 했다.
아이를 데리고 자주 집 밖을 나섰다. 계절의 사이사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함께했다.
오직 그 계절에만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이 아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 스미길 바랐다.
철마다 새롭게 피어난 꽃들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는 꽃을 쓰다듬으며 "아~ 예쁘다."하고 말했고, 난 그런 아이를 바라봤다. 꽃처럼 환한 미소를 오래 기억하려 수없이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온종일 함께하고도 잠자리에 누워서는 "꿈속에서 만나."를 말하며 잠이 들었다.
2024년 한 해 동안 아이와 떨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봤는데 다 합쳐도 며칠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 나에게 올해는 그저 '엄마의 삶'이었다.
육아휴직 후 다른 역할이 아닌 엄마의 역할에 집중한 이 시간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비슷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게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지루함이 아니라 무탈함에 대한 깊은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내 품에서 쉼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어느새 달력을 보며 1, 2, 3, 4, 5, 6, 7, 8, 9, 10, 11, 12월이 아닌 아이의 월령으로 시간의 흐름을 헤아리고 있다.
'2월에 뭐 했지?' 하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12개월의 아이는 어땠는지를 떠올리면 그제야 내 모습도 떠오른다.
올해 끝자락엔 아이에게 더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어 내 안의 오랜 불안을 마주하기로 다짐하고 글쓰기도 시작했다.
오글오글 글쓰기 모임을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게 올해 엄마 아닌 내 모습과 관련된 기록의 전부인 거 같기도 하다.
나는 그게 허탈하지 않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엄마 역할로 꽉 채워서 사는 삶을 택할 것이다.
앞으로 올해처럼 자라나는 아이 모습을 꼭 붙어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시간을 뒤돌아 보다가 알게 되었다.
새벽에 깨서도 "엄마~"부터 찾는 이 아이에게 난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아이도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 가족에겐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아이를 돌보며 이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깊이 느낀다.
꿈이 실현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나는 아이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내 꿈이 실현된 꿈임을 알았다.
20대의 내가 품었던 꿈의 문장. 여전히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