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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람 Jan 01. 2023

가족, 비빌 언덕

가까울수록 더 소중히 

가족,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녀에게 영양분과 DNA를 물려주고 성격 발달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니 말이다. 한국처럼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기 전까지 상당한 시간을 부모와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하다. 어떨 때는 부모가 나고 내가 부모 같다. 성인이 되었어도 부모와 자녀의 경계는 모호하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고 자연스레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아빠는 나만큼 섬세하지만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이야 정신 건강 쪽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아졌지만 경상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수성가한 아빠에게 '정신 건강'이란 용어 자체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는 감정 조절이 힘든 사람이었다.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온화하고 자상했지만 화가 날 때는 늘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던지고 부셔야 분이 풀렸다. 물건이야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자녀들의 마음이다. 가뜩이나 예민했던 아이에게 아빠의 폭력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더 무서웠던 것은 아침 밥상에서 숟가락을 던지던 아빠가 회사에만 가면 천사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빠의 직원들에게는 어찌나 상냥한지, 아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혼돈스러웠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가족은 빼려야 뺄 수 없는 주제였다. 특히 아빠 이야기는 나에게 눈물 버튼이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를 땐 문장 하나를 끝내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제가 점점 아빠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봐봐요. 저도 결국에는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요." 나는 말 그대로 슬펐다.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빠를 더 잘 이해하게 되어 더 마음이 아팠다. 아빠도 나처럼 people-pleaser였던 것이다. 밖에서는 어떻게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사회생활을 해야 했고, 매일 다른 페르소나를 써가며 버텨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버거웠을 것이다. 술담배도 하지 않는 아빠가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은 가족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모든 감정의 폭탄들이 집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아빠를 실컷 미워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이 상황마저 가혹하게 느껴졌다. 


마음의 병을 얻고 아빠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했을 때, 우리 사이도 새로운 전환의 단계를 맞이하게 됐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도, 아빠의 인생에도 지진과 같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 고통이 해소됐던 아이러니한 시간들을 통해 아빠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세상에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연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편하니까, 가족이니까, 남에게도 못할 행동들을 정작 자기 가족에게는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만큼 어려운 인간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가족은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겪게 되는 인간관계이자 작은 사회이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돌봄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있어야 하고 쭈뼛쭈뼛 사과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4년이 흐른 지금,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부모님 댁에 머물게 되었다. 점점 더 왜소해지는 아빠의 어깨와 훤해지는 정수리가 애잔하다. 온 우주 같아 보이던 아빠가 비로소 노년을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난생처음으로 아빠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둘이서 감자탕을 먹었다. 아빠가 묵묵히 살을 발라 내 접시에 놓는다. 아빠는 도대체 뭘 먹는 거냐고, 배부르니까 괜찮다고 사양하는데도 소용이 없다. 맛있는 부분은 다 내 차지다. 아빠는 내가 마흔이 되고 쉬흔이 되어도 아기를 다루듯 내 접시에 살을 발라 올려놓으실 것이다. 그리웠던 아빠의 사랑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쉼 없이 국물을 퍼 먹는다. 나를 옥죄는 것만 같았던 이 지독한 사랑을 이제는 두 팔 벌려 가득 안고 싶다. 


오랜만에 가족이란 언덕에서 마음껏 굴러보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 태어날 때부터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언덕이었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언덕만큼 손이 많이 가는 언덕은 없을 거라는 것을. 매해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허투루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 소중한 언덕이 경애의 마음으로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기도해 본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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