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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람 Oct 24. 2022

30년 치 실망을 한꺼번에 드립니다

가족에게 우울증을 오픈하던 순간

드디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나의 우울증을 알릴 때가 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으므로 바로 전화를 걸 수도 있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한국 시간으로 다음 날 저녁에 영상통화를 하자고 메시지를 날렸다. 무슨 회의 날짜를 잡는 것도 아니고 엄마 입장에서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을 것이다.


영국 시간으로는 다음 날 점심이었기에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하루가 10년 같이 느껴지던 날이었다. 일단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해야 했고 그 이유를 말하려면 나의 우울증을 설명해야 했는데 이 상황을 도무지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엄마랑 유치한 말다툼은 했어도 학창 시절 속 한번 썩혀본 적 없는 얌전한 딸이었는데 엄마가 충격받을까 봐 걱정도 됐다. 엄마는 그나마 순한 맛인데 매운맛의 아빠에게는 이걸 또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냥 말하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당장 다음 달, 한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기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 보이지 않는 병에 걸린 것도 서러워 죽겠고 내 코가 석자인데 이 순간에도 가족들의 감정을 챙기고 있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다음 날 점심, 약속된 시간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예상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침착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는 이미 내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울음을 멈추고 간신히 입을 떼 엄마에게 사과했다. "엄마, 실망시켜서 미안해." 순한 맛의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장 한국에 들어오라고 했다. 휴, 생각보다 엄마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내 자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내가 만약 우울증이 아니라 다른 병에 걸렸어도 실망시켜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엄마에게 했을까? 그 순간 엄마에게 언급한 '실망'이란 한 단어로 그동안 살아온 나의 모든 날들이 압축되는 듯했다.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나에게 실망했을까 봐 그것부터 먼저 겁이 났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아직 누군가를 실망시킬 용기가 없었다. 언제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고 안 좋은 모습이나 나약한 모습은 나만 알고 싶었다.




그날 우울증을 오픈하고 어쩌면 30년 생에 처음으로 부모님께 역대급의 빅엿을 날렸다. 더 이상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며 엄마 아빠가 바라는 이상향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선전 포고해야 했다. 부모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거나 마찬가지니 그때 부모님이 받은 충격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이러다 부모님이 나와 인연을 끊는다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부모님과 한국에서 다시 재회했다.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우셨고 아빠는 처음에 화를 내셨다. 역시, 매운맛의 아빠였다. 내가 한국에 머물렀던 한 달 반 가량의 시간 동안 아빠는 무기력한 나를 내내 못마땅해했고, 어떻게든 다시 예전의 말 잘 듣는 착한 딸을 데려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아빠가 그럴수록 방문을 더 걸어 잠갔다. 그러다 출국 일주일 전쯤 아빠가 낮부터 밖에 나가시더니 저녁에 막걸리를 들고 오셨다. 이미 한차례 술을 드신 상태였다. 그러더니 거실로 나를 부르셨다. 또 싸우자는 건가,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아빠가 덥석 나의 손을 잡았다. 몇 년 만에 잡아보는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아빠의 손이었다. "보람아, 미안하다. 아빠가 다 너 잘되라고 그랬던 거야." 평생 잊지 못할 아빠에게 들어본 진심이었다.


가끔은 누군가를 실망시키면서까지 내 자신이 될 필요가 있다. 나는 어쩌면 실망 그 이후에 다가올 미지의 단계가 두려워서 지금껏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건 돌을 던져 남의 창문을 깨는 것만큼 두려운 일일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다가오는 감정은 생각보다 포근하고 평온하다. 나는 더 이상 애써 예쁜 모습만을 보여주며 관계를 끌고 가지 않는다. 그때의 한국행을 통해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사랑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모습에 실망을 할지 만족할지 선택하는 건 상대방의 몫이다. 나는 그저 나의 몫, 내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 것. 그 몫만 가져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져버리니 속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오늘따라 맨 얼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보드라우면서 상쾌하다.


매운맛의 아빠와 매운맛의 딸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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