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길들여본 건 오직 나의 하루, 일상의 루틴뿐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고, 모든 것을 조금씩이라도 해보려면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눠 '루틴'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고, 비슷한 것끼리 묶어 아침/오후/저녁으로 구조화한 뒤, 소요 시간을 조정해가며 수정하고 다듬었다. 그렇게 루틴이 정착되었고, 나는 내 하루를 길들여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필사를 하다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책임이 있는 거야."
그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내게 ‘길들이다’는 나의 하루를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1월, 나의 분신 같은 보물이 찾아왔다.
보물로 인해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길들여야 할 존재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무게감 있는 책임까지도.
몇 년간 정성 들여 길들인 루틴은 아이 앞에서 단번에 무너졌다.
하지만 그 무너짐이 싫지 않았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조그마한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겨우 잠든 아이가 깰까봐 발소리도 죽이고 목소리의 볼륨도 낮추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행복했다.
아이의 시간은 월 단위가 아닌, ‘하루하루’가 성장이다.
성장하며 아이는 내게 길들여졌고, 엄마 목소리를 알아듣고, 엄마 냄새를 기억하며 세상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환하게 웃어주는 그 모습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격한다.
나는 지금, 아이를 온전히 길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묶어두기 위함이 아니라, 언젠가 이 아이가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돕는 길들이기다.
또 그 옆에는, 언제나 '책임'이 함께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