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참 신기하다. 수국은 한 여름에 꽃을 낼 수 있는 가지가 따로 있다고 한다.
한 겨울을 혹독하게 보낸 가지.
꽃도 잎도 다 떨구고 볼품없이 앙상하게 겨울을 이겨 낸 가지에서만, 오직 그 가지에서만 다음 해에 꽃이 핀단다. 물을 좋아하는 수국이지만 겨울에는 최소한의 수분과 가지만으로 힘겹게 시간을 버텨낸다고. 행여 그 해 봄에 새로 난 줄기가 있더라도, 겨울을 보낸 가지에서 난 줄기가 이니라면, 꽃은 맺지 않는다는 것. 혹독함이 있어야만 꽃을 허락하는 엄격하고도 아름다운 식물.
그런 생물학적 조건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질문들이 날아왔다. 꽃을 피울 앙상하고 혹독한 가지와 겨울, 내 삶의 겨울은 언제였을까, 아직 오지 않았을까. 나는 혹독함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고 싶나, 아니면 꽃 없이도 아름다우면서도 겨울을 이겨 낼 필요도 없는 줄기로 남고 싶나. 그걸 내가 정할 수 있긴 한건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나의 겨울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어서 일까. 줄기로만 남는 시기에 겨울을 보낸 앙상한 가지에서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그냥 그 겨울을 지나기만 했다는 걸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 난 모든 꽃은 칭찬받아야 마땅한가.
매일의 질문을 가지고 그 꽃의 생존을 바라본다. 그가 잘 살아 견뎌내어,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참 예쁜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하고 도닥이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닥임을 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겨울의 앙상한 가지에도 다정함을 나눠야지. 겨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