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Sep 02. 2020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

개와 고양이 이야기

동물을 좋아하지만 인간은 너무 쉽게 혐오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소위 ‘시골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앞 집 개들을 주인을 대신해 돌보고, 보리를 데려와 같이 지내면서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간을 쉽게 혐오하게)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에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혐오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 아쉽게 느껴졌었다.


진돗개인 복구를 키웠던 적이 있으면서도 그런 상태,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마 복구의 주 보호자가 아빠였기 때문인 것 같다. 복구는 4년 정도를 살았고, 실외 배변은 물론 하루에 한 번은 꼭 긴 산책을 했지만 그래도 산책 교육이 아주 잘 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줌이 마려워서였겠지만 산책을 나설 때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게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하게 앞서 나갔고, 줄을 당기는 습관은 거의 고치지 못했고, 산책하다가 줄이 풀려서 몇 시간을 산을 헤맨 적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있거나, 익숙한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참 예뻤고, 가족들과 산책할 때도 쉬는 시간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입질도 없었고, 보채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복구에게 잘해준 것이라고는 좋은 사료를 사 준 것 밖에는 없다. 그것도 일 하느라 바빠서 잊으면 엄마 아빠가 마트에서 급히 사다 먹이기도 했다. 못  해준 게 너무 많아 마음이 아플 뿐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쓸 때도 아니라서 사진이 많이 없는 것도 아쉽고. 아무튼 이렇게 복구를 예뻐했으면서도 내가 복구를 키우는 주 보호자는 아니었기에 불편한 점들을 많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산책은 아빠 담당이었고, 내가 부모님 집에 가서 복구와 산책을 나서더라도 짧은 산책 외에는 아빠와 함께였다.

아빠와 함께 산책을 하면 큰 개를 데리고 나왔다는 눈총은커녕 신기하고 반갑게 보는 사람들만 만났다. 대부분이 우호적이었고, 개를 무서워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도 우리가 비켜 있으면 고마워하며 조용히 지나갔다.

복구와 함께 찍은 사진들. 싸이월드에서 다운 받은거라 화질이 이렇다.


내가 보리나 다른 아이들과 산책을 할 때는 다르다. 복구가 있었던 때로부터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동물보다 사람을 먼저 교육해야 한다는 TV 프로그램이 이렇게나 많아졌는데도 그렇다. 강아지를 왜 밖에 데리고 나왔냐고 하고, 똥을 싸서 냄새나고 더럽다고 한다.- 이 똥 문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수세식 변기로 흘려보내는 인간의 똥은 얼마나 깨끗한지.. 제 손을 떠나면, 제 몸을 떠나면 잊어버리는 인간에 대해서- 개를 왜 밖에 데리고 나오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또 절대 개를 집 안에 들이지는 않는다.

산책을 할 때 느끼는 시선들 중 80% 이상은 내가 젊은 여성이 아니었다면 받지 않았을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인 짝꿍과의 산책은 한결 편안하다. 물론 이사 오고 나서는 밝을 때 산책은 거의 나 혼자 했고, 저녁 산책만 같이 해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용수리에서의 산책만 생각해도 그렇다. 내가 혼자 산책할 때 시선을 길게 해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런 시선들을 계속 받다 보면 당연히 예민해지지 않을까. 개를 데리고 혼자 산책하는 여성은 왠지 긴장할 요소가 더 많은 것 같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성차별에 대한 얘기까지 이어졌지만 앞으로 다시 돌아가면, 개를 키우는-특히 여성- 사람이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경계하고, 더 나아가 혐오라는 감정까지 느끼게 되기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개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고, 동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다 보면 환경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지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다른 동물들도 더 눈에 띄고 마음이 쓰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동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에 대해서도 더 염려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반려동물 관련 물품들 마케팅에 제품 소재나 쓰레기 문제까지 같이 언급되는 이유가 많은 까닭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부분들도 더 신경 쓰고, 걱정하게 되는데, 같은 종(species)에게는 왜 그게 안 될까.

불쌍한 동물들이 생기는 이유, 환경이 오염되는 이유들이 모두 인간에게서 기인하기 때문 아닐까. 동물과 관련된 끔찍한 뉴스들이 하루가 다르게 이어지고, 기후 변화의 무서움은 매일 체감한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학대당하는 동물들, 인간의 이기심으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지구를 보다 보면 인간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쉽겠다. 더군다나 나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까지 느끼다 보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개를 임시보호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