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사람이 무리를 이뤘다.
보리는 백미 현미가 다녀가고 나서 확실히 애교가 늘었다. 애교라기보다는 스킨십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앉아 있으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만져달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보리를 보면, 백미 현미가 있을 때 내가 앉기만 하면 옆에 다가와 드러눕는 백미와 현미를 멀리서 멀뚱히 쳐다보던 보리 표정이 떠오른다. 자기도 슬쩍 끼어들어 봤다가 이내 어색한 듯 자리를 뜨기도 했다. 멀찍이 자기 자리를 잡고 쉬던 보리 모습을 생각하니 그래도 개들끼리 쉴 때는 건드리지 않는 자기들끼리의 약속 같은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백미랑 현미 중 행동이 빠른 녀석이 먼저 다가와 자리를 잡고, 다른 녀석이 뒤늦게 다가와 눈치를 보다가 양보인지 포기인지 한숨을 폭 쉬며 자리를 잡고 나면 보리가 슬쩍 다가와 킁킁거리다가 자기도 슬쩍 자리를 잡던지 멀찍이서 왜 저렇게 저기 못 가서 안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보리 표정이 내 옆자리를 못 차지해서 아쉽다기보다는 친구들이 자기랑 놀지 않고 내 옆에서 쉬고 있으니 아쉽다는 표정이어서 미안하고 안쓰럽다기보다는 웃기고 귀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는데, 그러다가 다\도 세 명이 다 내 옆에 와 자리를 잡으면 겨울밤이 유독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개들을 아무 데도 보내지 않고 내 옆에 품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람 둘과 개 셋이 복작거리며 살면 어떤 어려운 일도 다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그 시간이 충만했는데, 아마도 개들이 곧 떠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보낸 시간은 한 달이 조금 더 되었고, 현미의 임보처는 먼저 정해졌지만 백미 임보처는 떠나기 이틀 전에야 확정이 됐다. 현미가 혼자 긴 비행시간을 견딜 생각을 하니 너무 걱정이 됐는데, 다행이었다. 다만 그전까지 백미가 남아 우리와 시간을 더 보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심 기대도 있었는지 아쉬운 마음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잘 된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둘이 함께 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긴 비행이 힘들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
그 이후 나는 부모님 댁에 있다가 한 달 만에 보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보리가 생각보다 나를 반기지 않아서 서운할 정도였다. 공항에서 차를 타는데도 꼬리가 흔들흔들 거리는 정도였고, 잠시 내려서 산책을 하는데도 내 쪽은 본체만 체 잠시 냄새만 맡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보리가 그때 내게 조금 삐져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들이 삐지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백미와 현미, 그리고 그 애들의 큰 크레이트 두 개가 빠지자 집은 전에 없이 휑하게 넓어 보였지만 그래도 보리가 있으니 빈자리가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아마 한 달 동안 다른 공간에서 지낸 것이 충격을 완화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리가 내게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며칠이 지난 후부터였다. 처음에 보리의 시큰둥한 태도가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보리는 원래 데면데면한 편이니까 심상하게 생각했던 터라 언제부터 보리가 전보다 더 친근하게 굴었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일주일은 더 지나지 않았었나 싶긴 하다. 같이 벚꽃도 보러 가고, 카페도 같이 가고, 날이 좋으니 바다 산책도 많이 하고, 캠핑도 다녀왔다. 날이 좋으니 어디를 가든 보리와 함께 다녔다. 게다가 3월부터 일도 쉬고 있어서 보리랑 동네 산책도 많이 했다. 너무 많이 다녀서 그런지 보리는 다리가 탈이 나서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렇게 붙어 지낸 것이 유대감 형성에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보리는 가까이 와서 다리에 턱을 괴거나 만져달라고 손을 들어 툭툭 치기도 했다. 백미나 현미가 오기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들이었다. 가까이 와서 앉기는 해도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껴안고 있어도 싫어하는 것 같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놓아주면 바로 도망갔었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앉아 있을 때 허벅지에 몸을 붙이고, 다리 위에 고개를 올려놓는 행동은 보리한테는 없던, 백미나 현미가 하던 행동이었는데 지내는 동안 배운 걸까 싶어서 백미와 현미가 지내는 동안 멀찍이서 바라보던 보리 모습이 떠올라 괜히 짠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보리의 행동 덕분에 백미와 현미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잦아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보리를 데려와서 보리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데리고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처음에는 세 명의 개들 중 가장 데리고 오기 쉬운 아이를 데려온 것에 불과했고, 계속해서 남은 두 아이들을 챙기는데 신경이 분산되어 있었다. 무무가 다행히 입양을 가고 난 후에는 아이비가 임신을 했고, 강아지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에도 보리는 어른스럽게 잘 기다려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가끔 마당에서 노는 것으로 만족했고, 삐약삐약 소리를 내는 강아지들이 궁금했지만 가까이 가 보지도 못했다. 가끔은 강아지들이 들어와 방을 빼앗고 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와 새끼 강아지들이 떠난 다음에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수수가 남아 사람들의 관심을 물론이고 침대까지 뺏기기 일쑤였다. 수수도 떠나고 나서 얼마 안 지나 교통사고가 나서 수술을 했고, 병원에서는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다시 병원에 갔을 때 보니 그 시간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회복하는 기간 동안은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었지만, 다 회복이 됐다 싶을 즈음에는 다시 새로운 개들이 집에 왔다. 백미와 현미였다. 아이비가 왔을 때는 보리가 친구 집에 가 있었는데 그 시간은 아마 행복했을 것이다. 실컷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도 있었고, 맛있는 간식도 많이 먹었으니까.
백미와 현미는 네달 정도는 마당에 있다가 미국에 가기 한 달쯤 전부터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다. 그때도 보리는 남의 집을 전전했다. 멍멍이 친구네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보리를 예뻐하는 사람 친구 집에 있었는데,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갈라 치면 꼭 우리 집 방향으로 틀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우리 집에 와 있고, 밤에 백미 현미가 들어와서 잘 때만 다른 집에 맡겨 두었는데, 둘째 날부터는 밤에도 낑낑거리고, 새벽에도 낑낑거려서 다시 집에 돌아왔다. 백미와 현미 둘 만 집에 적응하는 시간을 좀 두려고 했었는데, 졸지에 바로 셋이 함께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셋 다 순한 친구들이라서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보리가 멍뭉이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자꾸 먼저 놀자고 건드렸는데, 백미랑 현미는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다음부터는 다시 사람과의 스킨십에 더 집중해서 보리로서는 조금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는데, 이제 와서 조금 달라진 보리 태도를 보면 보리도 그때 다른 개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낯설고, 관심과 사랑을 뺏기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보리가 정말 외동처럼 지낸 지 이제 5개월째다. 우리 집에 와서 지낸 시간을 생각하면 ‘겨우’ 5개월이다. 얼마 전에 보리도 ‘삐진’것이 아닐까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반려 가족들의 SNS를 보면서 개가 삐진 내색을 한다기에 그게 어떤 걸까 궁금했는데, 보리에게 그런 모습을 봤다. 최근엔 거의 늘 보리와 함께 외출을 하다가, 어느 날 잠시 둘만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보리가 그 사이 주고 간 간식도 먹지 않고, 우리가 오고 나서야 물을 먹고 간식을 먹는 것이었다. 그 전에도 한두 번 두고 간 간식을 우리가 오고 나서야 먹거나, 밥이나 물을 먹는 모습을 봤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가 오고 나서 반기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에 들어가더니 다시 불러서 만져주자 그때야 간식을 집어 먹고, 물도 마셨다. 그 모습을 보니 그 전에는 보리가 외출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삐졌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인간이 생각하는 ‘삐진’ 감정은 아닐지라도 뭔가 자기만 빼놓고 다녀온 우리에게 뭔지 모를 서운함이나 낯선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보리가 드디어 우리를 ‘무리’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당에 풀어놓아도 혼자 나가지 않고 우리가 함께 나서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을 봤다. 마당이 넓지만 울타리가 없어서 보리와 느긋하게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풀어주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리드 줄을 하지 않고 현관문을 나서는 일도 없었다. 순식간에 뛰어 나가 교통사고가 난 아이를 찾은 다음부터는 더 조심했다. 그런데 이제는 리쉬를 들고 나오기까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와 함께 나가야 더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당에서 내가 작은 텃밭은 가꾸는 동안도 참을성 있게 잘 기다린다. 보리의 참을성이 없어지기 전까지 밭일을 끝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긴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맞바람이 치게 환기를 할 수도 없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이른 아침과 조금 선선해진 저녁에는 양쪽의 창문과 현관문을 열고 환기를 할 수 있었다. 보리는 바깥이 더워서 그런지, 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는 건지 문이 열려 있어도 집 안에 잘 있었고, 마당에 나가더라도 보이는 곳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고양이가 나타나면 뛰어 나가긴 한다.)
당연히 완전히 긴장을 놓을 수는 없지만 이 변화는 크고 행복하다. 보리가 우리를 함께하는 ‘무리’로 인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우리와 외출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백미와 현미에게 배웠는지, 부러워했었는지 스킨십을 더 편안해하는 것도 정말 좋다. 그리고 나도 이제야 보리와 우리가 한 ‘무리’, ‘가족’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동안 다른 개들을 더 구하지 못하는데 대한 부채감이 너무 컸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아직도 집집마다 학대당하고 있는 개들은 너무 많고, 보리와 무무, 아이비, 백미와 현미를 데리고 나온 집에도 다시 개가 생긴 것 같다. 어찌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지만 내게 뾰족한 수가 없어 마음으로부터 제쳐놓았다. 저마다 자기 눈앞에 나타난 개며 고양이를 구하기에도 벅차다. 어디에도 도움을 구할 수가 없고, 나도 능력이 없다. 사회는 천천히 변하고 있지만 변화는 너무 더디고, 이 더운 날에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가족이라며 키우던 개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더위를 다스린다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을지 생각도 하지 않고 개를 먹는 사람도 있다. 그 생명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괴로움에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생명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내가 덜 힘들게 살 방법이다.-라고 나는 생각하며, 대게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하는 말들이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만난 개들이 내가 아닌 더 능력 있는 구조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 너무 적어서 부끄러웠다.
사람들 마다 감당할 수 있는 몫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도 각자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각자의 무리, 각자의 가족을 지키며 살기에도 힘든 세상이지만, 그 가족이 사는 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내 가족, 내 무리도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애정 표현이 많아진 보리 얘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보리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동안 다른 존재들과 사랑을 나눈 시간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