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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Dec 22. 2023

Marry? or Wedding?

결혼에 대한 고민인가 결혼식에 대한 고민인가. 


나는 결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결혼이라기보다는 결혼식이라고 해야겠지부모님과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결혼식 장면이라도 지나간다 치면 꼭 멈춰서 그 장면을 봐야 했다.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남녀가 꽃 장식으로 뒤덮인 장소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드라마 내용을 몰라도 결혼식 장면은 꼭 보고 싶었다전 후 장면이나 이야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아빠의 결혼 앨범도 여러 번 봤다어릴 때 문갑 위에 앉아 엄마 아빠의 결혼사진 액자를 들고아빠의 안경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아마 그 사진을 많이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다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한 엄마의 모습이양복을 입고 말쑥한 아빠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연지곤지를 찍고 한복을 입고 수줍은 표정을 지은 엄마의 사진도 여러 번 들여다봤다. ‘나도 커서 이렇게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는지 그냥 그게 예뻐서 계속 봤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드라마 결혼식 사진


내가 유년-유치원과 초등 저학년시기를 보낸 곳은 충청남도 공주인데, 90년대 초반의 시골 마을에서는 아직 동네에서 결혼식도 하고장례식도 했던 것 같다장례식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결혼식은 마을의 잔치 같아서 즐거웠던 몇 가지 장면이 또렷이 남아있다엄마는 그날 일찍부터 그 집에서 준비를 도왔다시골집 마당에 어머니들이 모여 분주했고여러 군데서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결혼식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서로 맞절하고혼배주가 오가는 장면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장면은 신랑 신부를 병풍으로 둘러 말고 돌리면서 그 안에 대추 같은 것들을 던져 넣는 것이었다일반적으로 예식장에서 하는 폐백의 짓궂은 버전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왁자했고신랑 신부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인 나도 끼어서 덩달아 즐거웠다그래서 내가 생각한 전통혼례의 모습은 그런 즐겁고 소박한 모습이었는데나중에 접한 전통혼례 의식은 엄숙하고 길게 느껴졌다     


기억나는 다른 결혼식은 외삼촌의 결혼식이다남산이었는지 보라매공원이었는지에서였던 한 야외 예식장이었는데어린 내 눈에 꽃이 만개한 예식장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아마 계절과 날씨가 좋아서 주변의 모든 푸르고 하얀 것들이 꽃장식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무척 젊었고연극배우였던 외숙모의 모습이 유독 아름다워서 그랬는지티비로 많은 결혼식을 봐 온 내게도 그 결혼식은 가장 아름다웠던 결혼식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 동화나 환상처럼 결혼을 생각했을 때 말고조금 더 커서 결혼식을 봤을 때 오히려 내 삶과 결혼이라는 것이 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20대 시절에는 결혼을 하는 친구가 그저 애틋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고서른이 넘어서는 마땅히 참석해서 축하해 줄 경사이자당사자 인생의 중요한 행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동생이 결혼을 할 때는, 가족 행사라는 의미 외에도 어리숙하게만 느껴졌던 동생이 결혼식이라는 큰 행사에 하객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아마 동생 신부의 공이 컸겠지만..      

동시에 결혼식의 많은 부분이 외주화 되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예식장신랑과 신부를 비롯한 혼주들의 화장과 의상신랑 신부과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영상축가사진과 영상 촬영음식 등 모든 것들이 나뉘어 제각기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 모든 선택에 플래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요즘 결혼식의 모습이다      

         

나는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가, 결혼식을 고민하고 있는가 그 질문부터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먼저 결혼식에 대해 생각을 해 볼까. 어릴 때 환상을 가졌던 결혼식을 나는 하고 싶은가. 드라마에서 처럼, 엄마 아빠의 사진에서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풋풋하게 웃고 싶지 않은가. 일단 풋풋한 나이는 지났고, 그래도 어쨌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싱그러운 꽃장식에 둘러싸여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은가. 그리고 풋풋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싱그러운 꽃장식도 다 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맘에 찰 만큼 아름다운 꽃장식을 한 예식장을 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눈이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예쁜 꽃장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은가? 남들만큼 아름다운 꽃장식을 한 예식장은 아니더라도, 드레스를 입으면 예쁘지 않을까? 그럼 나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대게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고 멋있어 보이고자 하는 그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모이는 그날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갑자기 들었다. 당연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아끼는 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 줄 것이고, 그런 마음도 살면서 때때로 받아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날의 주인공이 되기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고, 그날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몇 달이 되기도 하는 관리와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왔고며칠 전 공방에 난로를 설치했다나무장작을 태울 수 있는 오래되고 직관적인 난로다위에 고구마를 구울 수 있는 작고 동그란 서랍도 있다난로를 설치한 기념으로 일요일의 음식 짜장라면을 끓여 먹었고집에서 김치도 준비해 갔고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시골 마을의 자그만 가게에서 나는 훈훈한 연기가 지나가던 삼촌의 발걸음을 붙잡았고 금세 동네 사랑방 느낌이 났다. 동네 삼춘은 너희는 결혼을 안 할 거냐고 물으신다. 삼춘이 물으시는 게 결혼식인지, 결혼에 대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쑥스럽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삼춘은 그래서 너무 나이 들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결혼할 시시기를 놓쳐버린 것일까?  


아기도 낳아야 한다고 하신다. 내 생각에는 아기를 낳을 시기도 지난 것 같은데.. 하지만 결혼을 하면 한동안을 아기는 안 낳느냐는 질문을 들을 것 같다. 결혼 이후 이어지는 다른 질문을 들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결혼을 결심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이 사는데 해야 할 일이 왜 이렇게 많은가. 다르게 산다는 건 이렇게 안 해도 될 생각까지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 텐데, 나는 왜 자꾸 다르게 살 욕심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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