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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Oct 26. 2024

3화. 사려 깊은 말-"그냥 사무실이에요."


창촌리 사무실 매매를 살피기 시작한 것은 2022년 5월 중순이었다. 전 건물주와 비용 조율에 3주 정도 보내고(결국은 조율 없이 계약하였다. 전 주인분은 급할 것도 없었고 딱히 팔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 도시의 부동산 흥정 tip은 통하지 않았다), 한 달 반쯤 지나 6월 중순에 계약이 성사되었다.


6-7월은 공간 구상을 하며, 시공팀을 찾았다. 오래된 시골집의 재건축은 특히 좋은 목수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구가옥이 주로 목조/목공 기반이기도 하고, 시공이 끝난 뒤에도 시골동네에서 여러 유지보수들이 발생하면 전담 목수님이 있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전남권 유서 깊은 사찰의 건축과 수리, 보수를 맡아서 하고 계시는 어른 목수님을 소개받았다. 현장 사람들 특유의 이미지와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 톤으로 정련된 대화 스킬을 가지신 분이었다. 별 어려움 없이 우리는 공사 일정과 견적을 정하고,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초여름을 지났다. 


오랜 기획자 선배님을 만난 것 같았다고나 할까.  


2022년 8월은 유난히 비도 많았고 무더워서, 공사가 어려운 시간이었다. 한 달간은 공간의 스토리와 대략의 설계 방향과 구현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레퍼런스들을 정리하기로 하고, 찬찬히 공간 기획서를 준비했다. 따로 설계 디자이너가 있는 공사가 아니라서 우리 측에서 공간 기획서를 정리하면, 목수님의 노련함으로 시공을 하자는 계획이 있었다. 8월 말 즈음, 목수님은 3가지 타입의 도면도를 준비해 오셨다. 모눈종이에 손으로 직접 그려서 가지고 오셨는데, 그 어떤 세련된 페이퍼 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제안들이었다. 3가지 안은 각각 공간의 차별점이 명확했고 선택지의 묘미가 있었는데,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면으로 평가하자면 오랜 기획자 선배님을 만난 것 같았다고나 할까.  



공사의 최종 설계는 어찌어찌하여 전문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게 되었지만, 그 과정까지 목수님과 협의가 어려웠던 일은 없었다. 늘 가만히 의견을 들어주셨고, 그 의견에 대한 평가보다는 방법을 찾아서 대안을 제시해 주셨다. 그래서 공사가 시작된 9월부터는 현장의 모든 문제에 대해 나는 목수님께 맡기고 의지하게 되었다.


"그냥 사무실이에요."


이 분의 사려 깊음을 느낀 일이 또 하나 있다. 공사 중에 현장에 내가 가 있을 때면, 유난히 동네 분들이 구경을 오시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위해 찾아오셨다. 그리곤 "여기, 뭐 하려고 그러는가요?"하고 물으시는데, 그럴 때마다 먼저 나서서 "그냥 사무실이에요."하고 답변을 하셨다. 창촌 사무실에는 작은 거주공간도 딸려 있고 그 부분에 대한 디테일을 세심히 챙기는 것도 아시면서, 굳이 사무실 외의 주거 공간도 있다고, 그 말씀을 안 하시는 이유가 있는 거다. 시골 동네의 길어지는 이야기를 미리 차단하려는 것도 있을 것이고, 거주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 이상의 얘기를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되었다. 


도시에서는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시골이다. 그들에게서 나는 시간 쓰는 법, 일 하는 법, 마음을 내는 법, 삶을 공경하는 법, 관계에 조심성을 갖는 법 등을 새로 배우는 기회가 종종 있다. 도시의 그것과는 다르고 도시의 잣대를 놓지 않으면 모를 진귀한 노하우들인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한번 모아서 해보려 한다. 아무튼 목수님도 그런 가르침을 주시는 분인데 <기획자의 집> 유지 보수를 핑계로 좀 길게 인연을 잘 만들어 가고 싶다.   


목수님 성함은 김자 재자 술자로 이제는 은퇴를 준비하며 인근 마을에 목공방을 짓고 계신다. 목공을 배울 수 있는 공간과 개인 작업 공간도 있는 곳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제자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초승달 눈으로 미소를 잔잔히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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