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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Oct 26. 2024

4화-로컬라이프, 나를 겪어내는 일입니다

2018년부터 2021년 초반까지 제주에서 지냈다. 지역살이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당시 여러 이유들이 씨실과 날실로 짜여져 어느새 제주 애월의 노을을 마주하고 있었다. 근방에 가게라고는 편의점 하나가 전부였던 시골마을, 그래도 그 유명한 '애월'이니 왠지 위안이 되었다. 애월에서 1년을 보내고, 사무실이 가까운 제주시내로 넘어와 2년여를 보냈고, 그 사이 로컬붐이 크게 일었다. 도시재생, 지역창업, 로컬 크리에이터 등등 혁신의 바람은 더 신선하고 색다른 문화를 찾는 이들을 모이게 했다.



지역 정착은 일과 생활 모든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


지역 정착은 일과 생활 모든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다. 그만큼 만들어온 기반을 허물고, 새롭게 돈과 체력 등을 비롯 많은 리소스들을 투여하게 된다. 대개 '척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현지 산업 생태계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니, 마음 준비가 단단해야 한다. 기회는 적고, 보릿고개는 길며, 단비도 해갈이 될 정도로 충분치 않은 곳이다. 다행인 것은 지자체에서 산업 육성을 위해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꽤 디딤돌이 되어준다. 인적 네트워크, 자금운용, 공간 제공 등 지역 안착에 유용한 공공 서비스들이 있다.


제주살이를 시작한다고 할 때, 지인들 걱정의 절반은 '육지것'이 겪을 괸당문화였다. '이당 저당해도 괸당이 제일이여.'라는 제주사람들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 살아본 바로는, 딱히 차별당한다고 느낀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한껏 열어준 토박이 분들의 문화 속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한 육지것의 이기적인 모습이 반추될 뿐이었다. 현지의 창업 커뮤니티 몇 곳과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과 벌인 '지역문화살롱', 사회적 가치 생태계를 공부하는 모임, 뜻 맞는 동네 지인들과 어울리던 사적모임 등등 여러 커뮤니티를 경험했다. 결국 현재까지 연결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적모임 쪽인데, 여기 구성원들은 전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며 현재 90%가 육지로 다시 나와 있다. 결국 괸당은 제주의 토착문화를 바라본 '육지것'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괸당문화 : ‘괸당’이란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 ‘괸당 문화’란 좁은 지역적 특성으로 지연과 혈연에 중복이 생기면서, 알고 보면 모두가 친척이라고 생각하는 공동체 문화를 말함)



(*제주에서 기획자의 집이 기획/진행한 로컬 문화 프로젝트)


자신을 위해서 바라보는 관조적 생활(contemplative life)이 진실로 행복한 생활


그렇게 중앙에서 멀리, 지속되어 온 안정감 있던 환경에서 멀리 분리되어 살게 되면 '관조의 효과'를 체감하게 된다. 관조(觀照)는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그는 감관적(感官的) 지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의 의미를 '바라보는 것'이라 규정했다. 오늘날에도 '바라본다''정관(靜觀)한다'는 의미로 관조를 풀어내는데 그 뜻이 이어져 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쁨을 목적으로 하는 향락적 생활, 명예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생활, 부(富)를 원하는 영리적 생활에 대하여, 자신을 위해서 바라보는 관조적 생활(contemplative life)이 진실로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에서의 삶은 그런 자기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번잡함이 줄어들고, 삶의 공백마다 이런 관조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아!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구나', '아! 내가 이런 것은 못 참는구나, ' '아! 내가 이런 시간은 이렇게 보내는 사람이구나' 하며 나를 겪어낸다. 도시에서의 반추와는 다른 것은 환경이 단조롭기 때문에 나와 나의 환경에 좀 더 깊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디 가서든, 로컬라이프를 얘기할 때 결국 나를 겪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나면, 단단한 자신감이 차오른다고도.



살며 과감한 변화를 할 때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이번 창촌리 프로젝트도 따지고 보면, 맞은편 상가에서 먹은 자장면이 맛있었으며 학교 앞 서행구역으로 모든 것이 시속 30km로 흐르는 분위기가 좋았으며 문구점 자리였고 할머니가 다섯 형제를 잘 키웠다는 스토리가 매력적이었기에 시작되었다. 아주 센서티브 한 상황에 놓이면 더듬이가 더 뻗어 나게 되는 거니까, 문서의 팩트 몇 줄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각 정보가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그 감각을 잘 다듬어 놓게 하기 위해서는 관조의 시간을 평소 자주 가져야 하고, 로컬라이프는 특히 그런 시간이 충실히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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