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derless Sep 18. 2024

요가베르데, 소농로드

제주여행 2일 차 (2024.9.14.)

요가베르데

요가를 잘 모를 땐 유연성이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코어힘도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제주에는 요가원이 더러 있는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요가 클래스도 있고 명상, 서핑, 사진 촬영까지 하는 곳도 있다. 제주에서 요가를 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신청해 봤는데 숲에서 진행하진 않았고 요가원 앞 잔디밭 위에서 들었다.

요가원 내부

내부는 아담했다. 나무로 만든 일반 가정집이었고 앞에는 잔디마당도 있어서 좋아 보였다. 도착했을 땐 살갗이 붉어지고 엄청 따가워서 요가복으로 갈아입을 때 살이 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근처 약국도 잘 안 보이고 해서 3박 4일 동안 저절로 식게끔 내버려 뒀다. 


요가베르데 전경

하나둘씩 수강생 분들이 오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한 30-4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버려서 기다리면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가 선생님의 탄탄한 몸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리여리 하시면서도 탄력 있고 곧아 보였다. 내가 원하는 몸이긴 한데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마냥 바라보게 된다.



누운 자리에서 바라본 하늘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다 보면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이 깨끗해진다. 수업 들은 내용은 아나하타차크라 빈야사 요가로 차크라(Chakra)의 뜻은 바퀴라는 뜻을 가진 에너지 통로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나하타차크라는 하트 차크라고 하여 '사랑, 연민, 따뜻함, 온정'의 힘을 담고 있고 이성 간의 사랑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뜻한다.


날이 무더워 요가 선생님께서 땀 흘리시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나도 이렇게 더워서 숨이 막히는데 그늘도 없는 자리에서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보니 감사하고 프로다움에 감동했다. 사실 원래 예약했던 수업은 요가만 하고 끝나는 수업이었지만 '소농로드'라는 유기농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서 식사하는 클래스로 변경해도 된다는 문자를 받아서 바로 변경 신청했다. 운이 좋았다.


수업 후 티 타임

수업이 다 마무리된 후엔 티타임을 가졌다. 어떤 요가원은 끝나고 차 한 잔 하는 곳도 있고 바로 파하는 곳도 있다. 나는 보통 수업 끝나고 집에 바로 가는 편이라서 티타임이 익숙하지가 않았는데 그럭저럭 좋은 점이 있다. 차 한잔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도 풀고 가볍게 대화 나누며 안면을 틀 수 있다.


요가 중


소농로드

소농로드 전경

요가베르데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소농로드' 식당 겸 카페가 있다. 예전부터 채식이나 건강식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요가도 하고 이렇게 자연식도 경험할 수 있으니 즐거웠다. 수업 중에 사진작가님께서 수강생들의 모습도 찍어주셔서 추억을 많이 남겼다.


매장 내부

매장 내부에는 책도 있고 몇 가지 건강식 제품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서울에도 비건식당이 있지만 아직까진 많이 가보진 않았고 실질적으로 비건도 아니기 때문에 갈 일이 없었는좋은 기회로 유기농 채소를 맛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식사 전 '소농로드'의 소개

맛본 로컬 채소는 감자, 당근, 버섯, 가지, 양파, 쥬키니, 아스파라거스, 롱빈이고 가니쉬는 당근라페, 열무피클, 양하 피클이다. 그중 먹어보지 않은 채소는 롱빈과 양하 피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열무피클 가니쉬가 맛있었다.


채소 커리

완전히 건강식이어서 소화가 잘 될 수밖에 없는 식사다. 같이 수업 들었던 분들과 가볍게 대화도 나누며 각자의 직업군이나 하시는 일들 그리고 왜 제주에 오게 되셨는지도 물어보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서 이런 일이 거진 없지만 제주에서는 자연스러웠다.


제주에 길게 살아보질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그리 많진 않고 아무래도 여행객들은 다시 떠날 사람들이라 생각해서인지 편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님 큰 욕심 없이 사시다 보니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으신 것인지 오히려 오픈 마인드로 대답해 주시는  일 수도 있고. 물론 서울에서도 대화는 나눌 수 있긴 하지만 처음 보자마자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건 상당히 어렵다. 어느 정도 벽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경계심이 크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당연한 일이다.


따로 구매한 제품은 없었고 가볍게 사람들과 대화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소농로드 앞에는 텃밭이 있었는데 실제로 텃밭에서 재배한 유기농 작물로 음식을 만들고 판매를 하신다고 하셨다. 요가하고 이렇게 건강식도 먹고 바다도 보고 숲에서 산책하고 살면 세상 걱정할 일이 사라질 것 같긴 했다. 아예 걱정을 없애고 살 순 없겠지만 불 필요한 욕망은 줄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교하는 삶에 대하여


제주에서 좋았던 점은 특별히 비교할 일도 자랑을 들을 일도 없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도 적거니와 거주하시는 분들 중에 큰 욕망을 갖고 있지 않으신 분들이 많았다. 서울살이가 피곤한 이유는 온 세상이 비교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얼마큼 돈을 가졌는지, 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성공은 했는지 안 했는지 등등 모든 것이 경쟁이다.


나 역시 경쟁주의, 자본주의가 가속화된 시대에 사는 사람이고 뒤쳐지기 싫어서 가열차게 살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어느 대학을 갔는지 물어보고, 졸업을 하니 어느 회사를 갔는지 물어보고, 회사를 퇴사하니 그다음은 또 무얼 할 건지 물어보기 시작한다. 30살 이 넘으면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고 결혼하신 분들에게는 아이는 언제 나을 거냐는 질문을 하신다. 점입가경이다. 제주에 오니 제주 땅 값을 말하는 사람이 있길 하나 그렇다고 내가 왕년에 무얼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길 하나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대화가 좀 편하다. 하는 얘기는 '오늘 날씨가 덥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정도이고 좀 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왜 제주에 오시게 되셨어요'. '제주에 살면 좋은 점은 뭘까요' 정도인데 그러다 보면 각자의 삶의 방향성이나 가치관도 말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긴 했는데 드물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젊어서인지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고 항상 욕망과 완전한 무욕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있다.


내 딴에 일과 관련해서 고군분투하기는 하는데 그것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서 고민이 많고 항상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여기서 어떤 걸 더 추가해야 될까를 생각하며 조금씩 대안점을 찾아 실행하는데 참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이건 내 역량 부족이다'를 느끼고 실패를 반복하며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때론 멈추기를 반복한다.


어찌 되었든 제주에 오니 비교하거나 자랑하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가 살면서 얻은 깨달음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전 07화 안도르, 비자림 숲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