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derless Sep 18. 2024

안도르, 비자림 숲

제주 여행 2일 차 (2024.9.14.)

안도르

안도르 카페 내부

함덕해수욕장에서 길게 물놀이를 하다 숙소에 잠시 들러 씻고 옷도 갈아입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제주에 가면 창 너머 녹색을 흠뻑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난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카페를 가든 어딜 가든 저렇게 푸르른 풍경이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안도르는 아마도 안돌오름 근처에 있어서 카페 이름이 안도르 인 것 같았다. 건물 구조는 ㅁ(미음) 자로 통로를 비우고 건물들이 둘러쌓고 있는 형태였다. 이런 구조를 좋아하는데 중정이 있는 구조는 여러 사람들끼리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다리가 되어 이쪽저쪽 건물을 옮겨 다닐 수 도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나 해방촌 신흥시장에 가면 매장 건물을 두고 그 가운데 마당이 있어 또 다른 매장과 교집합 되어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점점 격자구조의 도시화 개발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중정 구조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궁이 대신 보일러가 생기고, 중정 대신 아파트 복도가 생기고, 추후엔 복도조차 사라져 서로들 남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핵 개인화 시대의 도래도 요인이 될 것 같긴 하다.


보통 카페는 시그니처 음식이 있다. 커피든 디저트든 그 지역산물을 상징화한 상품을 만들곤 하는데 흑돼지, 한라봉 모양을 모티프로 한 무스케이크를 판매하고 있었다. 가까운 도쿄에만 가도 카와고에시에서는 고구마를 특산물로 하여 말린 고구마 과자와 캐릭터를 만들어서 지역 홍보를 대대적으로 해 나간다. 안도르 카페에서 만난 귀여운 디저트들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삭하고 담백한 베이커리류를 좋아해서 막상 카페에 가면 라테에 바게트나 사워도우, 올리브가 들어간 담백한 빵, 곡물 빵을 주로 찾는 편이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곡물빵은 고소하고 무엇보다 나처럼 소화 기능이 약한 분들에게 좋다. 위에 디저트 사진은 모양이 귀여워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필요한 책, 핸드폰, 커피

안도르에서 카페라테 한 잔에 에리히 프롬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오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지만 혼자 여행을 가면 책과 친구가 된다. 에리히 프롬 책은 약간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천천히 읽으면서 그 뜻을 이해해야 될 때가 더러 있었다. 읽으면서도 사랑의 범위는 참 광범위하고 너그러워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글로 의미를 아무리 말하고 읽어도 그것들이 나에게 체화되지 않을 땐 그저 허공의 문자로 남는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이 브런치에 좋은 뜻을 적어도 나란 사람이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항상 말하길 정리된 글만큼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좋은 사람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니 날 좋은 사람이다라고 상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안도르 카페 옆 포토존

난 뭔지도 모르고 가긴 했지만 이곳이 웨딩 포토존 이라는 걸 기사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배경이다. 짙은 나무와 수풀이 액자가 되고 저 가운데 예비부부 또는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저렇게 보면 약간 맹탕인데 가운데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멋진 풍경이 된다.



비자림 숲 

비자림 숲이 꽤 클 거라고 생각해서 들어갔는데 그리 크지 않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옆에 멋진 나무들이 드리워져있고 어떤 분들은 신발을 벗고 걸어가시는 분들도 있다. 나도 대담하게 한번 시도해 보려 발을 흙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뾰족한 돌이 아파서 곧바로 신발을 신었다. 역시 내 길은 아니었다.


새천년 비자나무

거대한 비자나무를 끼고 한 바퀴를 크게 도는 코스다. 카메라 화각이 넓지가 않아 전경을 다 담지는 못했는데 실제로 보면 굉장히 크고 웅장하다. 감동받을 정도의 아우라는 아니었지만 숲과 나무가 주는 무언의 힐링이 있다. 걸으면서 피톤치드니 나무에서 뭐가 나와서 건강에 좋다느니 하는 정보성 팻말을 봐도 실제로 걷다 보면 체감이 안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자연에 있는 것만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건 분명하다.


대략 1.4km 정도 되는 코스고 날이 더워서 걷다 보면 땀이 난다. 제주 여행을 하면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런 곳에 오시면 힐링되실 것 같았다. 역시 자연만 한 휴식처가 없다. 워낙 고요해서 걸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도 했다.


중간중간 풀 숲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었는데 아름다웠다. 보통은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훨씬 많고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은 극소수다. 혼자 여행한 지 꽤 돼서 이제는 비교적 자연스러워졌는데 맨 처음 홀로 여행했을 땐 영 어색하고 익숙하지가 않아 어딜 어떻게 가야 되고, 밥은 어떻게 혼자 먹나 하는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남과 맞출 수 없는 시간이 훨씬 많다.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아님 한국에 없거나 등등 각자의 삶이 있기에 시간을 조율하여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여러 브랜드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정보 수집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고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은 서서히 줄어들고 '여길 가면 어떨까?', '이곳에 가면 어떤 재밌는 게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지고 즐거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혼자 여행할 타지에서 듣는 하나가 '젊은 친구가 어떻게 혼자 왔어요? 여자 혼자 대단하고 멋있네요~'라는 말이다. 요즘엔 워낙 혼자 여행 가는 사람들이 개인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어떻게 다니느냐', '함께 누군가와 다녀라' 아니면 '결혼은 했어요?', '몇 살이에요?' 더 심화된 질문으로는 '결혼도 하고 혼자 오셨어요?'까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나를 굉장히 신기한 동물로 바라보시며 물어보시곤 하는데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내가 3박 4일을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전화를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우리 아버지는 내가 제주도 갔는지도 몰랐을 거고, 제주도 간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어머니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휴가를 보내시면서 휴식을 하셨다. 아마 나를 믿기 때문에 멀리 가도 연락은 이제 하시는 것 같고 어머니는 내 휴식 시간을 어느 정도는 존중해 주시기 시작했다.


맨 처음 홀로 제주 여행을 떠났을 땐 아버지께 체크인 시간도 알려드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제 도착하는지 말씀도 안 드렸는데 어떻게 아신건지 숙소 문을 열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그때는 어려서 걱정이 되셨던 것 같고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와서 자랑까지 하니 아예 신경도 안 쓰시는 것 같긴 하다. 오히려 편해졌다. 이건 조금 TMI(too much information)이긴 하지만 내가 심지어 일본에서 쓰나미가 터졌을 때조차도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일본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셨다. 살아와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부모님 눈물 흘리실 뻔 하셨다. 구애받지 마시고 떠나고 싶을 땐 떠나시길 바란다. 그리고는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일하기 시작하실 테니.



이전 06화 함덕해수욕장, 해녀김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