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derless Sep 16. 2024

서점숙소

제주여행 1일 차 (2024.9.13.)

5-6년 만의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한동안 제주 여행을 갈 수가 없어서 쉰다고 해도 서울의 일반적인 호텔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숙소에 책이 많으면 자기 전에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제주 카페나 해변가에 갈 때 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나와 읽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서점숙소

서점숙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ejubookhome

2인실 룸

공간은 단정하고 깔끔했다. 유리창에 나뭇잎과 꽃이 그려진 새하얀 커튼도 마음에 들었다. 이불도 적정 두께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드라이기, 헤어롤, 작은 등, 수건까지 기본적으로 숙소에서 제공하는 용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행 하루 전 날 급하게 스케줄을 짜서 저녁에는 다음날 갈 곳과 동선을 한 번 더 체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점점 여행지를 정확하게 찾지 못하고 갈 때가 많아진다. 여행 전날까지 일을 하다 보니 여유롭게 여행지 루트를 짜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서야 더 세세하게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숙소 안 입구 오른편에도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벽면, 계단 밑 공간, 식탁 옆, 2층 서랍까지 책들이 켜켜이 꽂혀있어 서점 숙소와 아주 걸맞은 공간이다. 책이 있어서인지 아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서인지 숙소 분위기도 아주 번잡하지는 않다. 술을 매개로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늦게 까지 고성방가 하는 사람도 없고 11시면 소등을 해야 돼서 시끄럽게 지내서도 안된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중간에 창문이 하나 있는데 색깔이 예뻐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제주에 가면 녹색과 나무색이 참 이쁘다. 저녁 8시에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 모임이 있고, 인원이 적은 경우에는 필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 첫날엔 피로도가 최대치로 올라가서 이야기하는 모임에 들어가지 않고 쉬면서 다음 일정을 천천히 보고 정리해 나갔다. 대화하는 사람들끼리의 분위기도 밝았고 아무래도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깊이 있는 질문을 꼬리 물듯 하다 보니 생각이 깊어졌고, 때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움도 많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감정이었다.


2019년까지는 적당히 네트워킹을 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삶에 많이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이가 먹을수록 타인이 그리 궁금해지지 않는 시기가 온다. 그런데 그것이 나 스스로 부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성숙해지는 길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냉정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면서도 냉철해지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배려하며 사는 정도가 마음에 든다. 모든 사람에게 잘할  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으며 그 삶이 내가 원하는 방식도 아니다.


서점 숙소에서 고른 2권의 책

숙소에서 고른 책은 두 권이다. 하나는 법륜스님의 인생수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법륜스님은 좋아하지만 맨날 영상을 볼 정도는 아니고 가끔씩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나오면 재밌게 듣는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인데 제주에 와서 처음 펼쳐봤다. 제목만 보면 마치 사랑하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라 딱히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숙소에서 이야기할 주제가 '사랑'이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예쁘고 깔끔한 책표지

책 내용은 상당히 철학적이라 다음에 교보문고에 가면 천천히 음미하듯 읽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성격 형성이 되는지,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지, 사랑을 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는지 까지 굉장히 세세하게 나와있다. 읽으면서 느낀 건 사랑은 진실로 마음이 넓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를 사랑하기로 했다면 상처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올바른 사랑을 위해서는 진실로 스스로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아성찰을 깊이 하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나아갈 때 상대를 더 나은 방향성으로 아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랑은 연인을 위한 사랑이든 자녀를 위한 사랑이든 쉽지가 않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책 이름처럼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제주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약간은 철학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서점숙소를 추천드리고 싶다.



  

이전 04화 서귀포 자연휴양림, 남원큰엉해변, 사려니숲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