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틀차에 바다에서 살을 너무 태워버려서 김녕 해수욕장에서는 해수욕을 하지 않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날 아침에는 함께 방을 공유했던 룸메이트 여성 분과 가볍게 식사를 했다. 낯선 사람과 자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대학 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 날은 날씨가 흐려서 어딜 가야 되나 고민하다 모래사장을 느릿하게 걷다 근처 책방으로 이동했다. 특별히 뭘 한 건 없다. 여행 1-2일 차는 평소보다 타이트하게 움직이고 다양하게 보고 경험했다면 3일 차부터는 속도를 늦추고 자연에 머무르며 쉬고 싶었다.
제주풀무질은 요가 클래스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가보게 된 곳이다. 제주를 가면 항상 책방 1-2곳은 둘러봤지만 이번에는 가지 말까 하다가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아 방문하게 되었다.
소설, 에세이, 시, 그림책이 있는 책방이었다. 책방에서 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강아지도 마주하고 사람을 봐도 꼬리 한 번 흔들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다. 시크함이 뚝뚝 묻어나는 태도와 달리 외적인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고양이과 강아지라고. 화도 내지 않고 너무 순한데 사람에게 극단적으로 관심이 없다.
책방을 둘러보다 책 한 권을 구매했다. '즐거운 어른'이라는 에세이 겸 자서전이고 70세 정도 되신 할머님의 지난 인생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사고방식이 너무 신식이셔서 70대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어있으셨다. 사실 이런 분들이 그리 많진 않다. 70대면 지극히 가부장적인 문화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고 유교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만난 '광복이'
실제로 보면 더 귀엽고 곰 같은 느낌이지만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은 것 같다. 정말 귀엽다. 아무리 쓰다듬어도 반응이 없으니 이 친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이랬다고 하는데 막상 바다에서 뛰놀 땐 그렇게 깨발랄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 친구 완전 반전 매력 소유자다.
무반응 광복이
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 5-6년 전쯤 독립서점 붐이 일어났고 서울시에서는 서울책방 지도까지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후 여타 사업장과 함께 여러 책방들이 하나둘씩 문 닫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독립 서점 열기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나 역시 4-5년 전은 지금보다 더 바빴기 때문에 책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고 자연스레 책방 가는 취미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이렇게 제주에 와서 작은 책방에 발을 딛게 되었다.
유기견 이야기를 잠시 동안 나눴는데 제주에는 버려진 유기견이 많다고 한다. 제주풀무질에 도도시크한 강아지도 사실은 유기견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유기묘, 유기견과 관련해서는 시스템 불모지고 보험도 안되기 때문에 많은 애견인들이 동물을 키운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서울에 올라가면 이따금씩 업무 공간 근처에서 떠도는 유기견들을 마주하고 어쩌다 로드킬 당하는 동물을 볼 때가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책방에서 만난 강아지를 보며 생명을 거두는 일은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걸 더 느꼈고, 유기견을 알뜰살뜰 살피는 책방 사장님의 여린 마음도 잘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