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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derless Sep 21. 2024

카페 모알보알, 조천포구

제주여행 3일차 (2024.9.15.)

카페 모알보알

매장 입구

카페 내부에 들어가니 동남아에 있는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러그에 천 소재로 만들어진 작은 소파까지 있으니 줄리아로버츠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떠오른다. 여 주인공은 의지박약에 어린아이 같던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자신만의 정체성과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 명상을 하고 다이어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 큰 바지로 갈아입은 후 피자를 먹는다. 그간 그녀의 삶에서 느꼈던 규율과 압박에서 벗어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일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먹고 사람들과 편히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편한 나이키 운동화에 책가방을 메고 제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서울에서 느끼긴 어려웠던 자유로움과 평온함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맨 앞자리에서 책 읽기
밖에서 바라본 카페 전경

창가 바닥에 놓인 앉은뱅이 소파에 앉아 바다를 두고 책방 풀무질에서 구매한 책을 천천히 읽었나 갔다. 여행 초반에는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으로 보내다 어느덧 보니 출국일이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퇴사하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반에는 CS나 사이트 시스템 잡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자동화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수동으로 모든 걸 처리했다. 상품도 매일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올리는 일을 1년 반 넘게 하다 보니 힘이 들어 입천장도 헐고 스트레스에 병원도 간간히 가는 일이 있었는데 벌써 운영한 지 4년 6개월이 됐다. 5년 차가 되면 그땐 자축이라도 해야 되나 싶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하는 일에 만족스럽지 않으니 갈 길이 멀 수밖에.


무념무상으로 턱 하니 걸터앉아 오롯이 책 속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니 주변인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더없이 행복한 하루 아닌가.  



조천포구

떠나기 하루 전은 숙소 근처를 가볍게 둘러봤다. 날 좋을 때 해안가를 끼고 뛰고 싶었지만 조천읍은 러닝 코스가 잘 나오지 않아 산책만 했다. 주변에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도 4-5시 이후부터 주황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모습이 아름다운 동네다. 노을질 때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둘 걸 그랬다.


제주는 어딜 가도 조금만 걷다 보면 과연 사람이 살까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고요하다. 오로지 바다, 돌담과 그 사이에 피어난 식물들만이 여행객들을 반겨줄 뿐이다. 포구로 가면 낚시하시는 분들도 보이긴 하지만 사람이 잘 안 보여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제주 어느 작은 읍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어릴 적 할머니 댁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잠시 추억에 잠기곤 한다.




서점숙소

숙소 앞

일찍부터 숙소에 나와서 움직이다 보면 오후 4시 반에서 5시에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다. 유럽 여행을 할 땐 보통 10시~11시부터 식사를 하고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한국은 아침부터 운영하는 식당이 있어서 일정을 일찍부터 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말 한국인들은 부지런하다.


숙소에 들어와 무거웠던 짐도 풀고 출국할 준비도 하고 글도 쓴다. 제주에 오면 노트북과 DSLR은 필수다. 어쩌다 보니 취미 중 하나가 공간 탐방이라 방문한 곳에서 느꼈던 것들을 글로 기록하고 그 안에서 배움을 얻곤 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긍정적인 점은 운영하시는 분들의 공간을 소개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호텔에서 조용히 묵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과 공간을 쓰다 보니 꿈 많고 열심히 사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앞으로 방은 혼자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에 상대방 신경 쓰다 보면 장시간 뒤척이게 된다. 결국 출국일에 한숨도 못 자고 일어났다.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방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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