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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derless Sep 21. 2024

롤링브루잉

제주 여행 4일 차 (2024.9.16.)

롤링브루잉


마지막 일정은 어떤 곳으로 점찍어야 되나 고민 됐다. 숙소에서 함께 묵었던 여행객들도 마지막엔 어딜 가야 될지 서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왜 마지막이라고 할 땐 이렇게 신중해지는지. 사람이 세상을 뜰 때도 꼭 의미 있는 한 가지를 하려 않나. 결국 본질적으로 좋아하는 것 단 한 가지만 하게 된다.


갈 곳이 아무리 많아도 출국 시간에 맞추려면 멀리는 못 가니 정말 가고 싶은 곳을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인 듯했다. 제주 동문에 위치한 디앤디파트먼트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오전 11시가 오픈이라 과감하게 포기하고 블루리본 서베이 맛집으로 평점이 높은 '롤링브루잉'을 선택했다. 제주에 가면 커피 맛집 1-2곳 정도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서울에 있는 프랜차이즈나 유명 브랜드는 아니었으면 했다. 그런 곳은 서울 어딜 가도 많다. 잘 꾸며진 곳을 원한 게 아니라 오로지 '맛'과 특색 있는 '콘셉트'만 느끼고 싶었다.


https://rollingbrewing.com/#anchor3

1층 공간에 놓인 식물들

오픈하자마자 가서 손님이 없었고 공간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여 사장님과도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었고 다행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셔서 질문 주시면 그에 대해 진솔하게 답변드릴 수 있어서 따뜻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일반 직장인일 때는 운영자 분들과 속 깊은 이야기는 못했는데 이제는 내가 운영자다 보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생겼다.

롤링브루잉은 부산과 제주에 위치해 있다. 작년 9월쯤 부산에 갔을 땐 커피 맛집을 거의 둘러보지 못했는데 실제로 부산에 가면 유명한 카페들이 많다. 부산은 무역과 문화의 요충지니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 문화가 집결된 곳이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젊은 인구들이 서울로 몰리면서 부산 또한 다른 지역과 다름없이 경제 비활성화 지역으로 되어가고 있지만 빈티지 제품, 대기업과 협업한 복합 문화 공간, 특색 있는 카페들이 남아있다. 롤링브루잉은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이고 현재 제주는 아내분께서 운영하시지만 부산에서는 남편 분께서 관리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커피

커피는 제일 기본으로 카페라테를 주문했고 사장님께서 콜드브루를 시음으로 한 잔 주셨다. 약간 차 같은 느낌이라 신기했는데 여쭤보니 가벼운 느낌으로 만든 콜드브루라고 말씀 주셨다. 카페인 맛이 강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마시면 꽃향(flolar)도 나는 것 같았다. 카페인 함량이 줄어들면 맛이 부드러워져서 찻잎의 맛인데 내가 맛을 잘못 느꼈을 수 도 있다. 보통은 카페에서 투 샷으로 제공하지만 롤링브루잉에서는 한 샷으로 제공해서인지 쓰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빈 속에도 거북하지 않았다.  

공간 구성도 운영자 만의 색이 담겨 특색 있었다. 각 테이블 위에는 잡지 LIFE의 표지를 마치 전시해놓 듯이 꾸며두었고 2층에 올라가면 오래된 잡지가 디스플레이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층에는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고 원두 볶는 기계와 오래된 회벽칠 시멘트 벽이 있어 빈티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잡지를 좋아해서인지 정감이 갔다. 대학 시절에 잠시 매거진 디렉터로 활동한 적이 있다. 각 대학교 학생들과 연합하여 잡지를 만드는 커뮤니티였고 그때는 경험이 워낙 부족해서 기획자로서 일을 잘 못한 것 같다. 리더십도 부족했고 자만했고 전반적인 사회 트렌드를 바라보는 눈도 너무 떨어졌다. 그래서 잡지의 주제가 대중적이지도 않았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대중성은 기본이다. 잡지 만드는 일은 안 하지만 여전히 매거진을 좋아한다. 매거진은 보기는 쉬운데 실제로 만들어보면 인생 최대치의 피로도가 쌓이는 일이라 편집 디자인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공간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 하고 출국 전 남은 1시간을 충분히 즐기려 했다. 제주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가시는 길에 꼭 한 잔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은 제주 공항에서 


제주 공항에 일찍 도착했는데 1시간 반 이상 연착이 돼서 책을 읽으면서 기다렸다. 글도 정리하고 여유롭게 도착한지라 딱히 마음이 급하지도 않았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워낙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서울 와서는 다래끼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서점숙소에 남긴 게스트들의 마지막 인사글

마지막 날은 함께 묶었던 여행객과 인사도 나누고 숙소의 모습을 담았다. 홀로 돌아다니기만 했다면 심심할 뻔했는데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뜻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재밌었고 여유로웠고 확실히 4-5년 전 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아주 미세하게 변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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