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1
부서 회식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던 참이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 선배가 내 뒤로 오더니 두 손으로 내 양쪽 어깨를 잡고 쫙 펴주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내 어깨를 편 선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당을 나갔다.
평소였다면 웃으며 “선배 왜요?”라고 묻거나 “오, 선배 시원해요!”라며 무슨 말이라도 했을 나. 하지만 선배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어버렸다.
‘결국 회사에서도 못난이 어깨를 들키고 말았구나.’ 나는 낙담했다.
내 어깨는 오래 굽어 있었던 같다. 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건 중학교 때. “어깨 좀 펴고 다녀라”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서다. 점점 부풀어 오르던 가슴이 부담스러워서였는지, 전체적으로 바르지 않은 자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의 지적 후 나는 허리에 힘을 주고 상체를 꼿꼿이 세우려 애썼다. 하지만 허리를 구부린 채 어깨는 축 늘어뜨린 구부정한 자세가 가장 편안했고, 의식적으로 만든 꼿꼿한 자세는 금세 편하고 익숙한 자세로 옮겨갔다.
마음이 위축되면 어깨가 더 굽었다. 긴장을 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어깨가 더 급격히 쪼그라들곤 했다. 20대 후반 어느 추석, 현관에 서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친척들을 맞이할 때였다. “아가씨, 어깨 좀 펴요!” 사촌오빠 부인의 말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 졌다. 내 자세가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먼 친척이 저토록 거침없이 지적할 만큼 많이 굽었나 부끄러웠고, 이 나이에 공개 망신을 당해야 하나 화가 났었다.
그 후 어깨를 더 의식하게 됐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남에게 찍힌 사진을 볼 때면 얼굴이 예쁘게 나왔는지 보다 어깨가 굽어져 있는지부터 살폈다. 회사 사람들과 있을 땐 특히 더 허리에 힘을 줬고, 다행히 회사 생활 10년 동안 내 어깨를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결국 회사 선배에게 굽은 어깨를 들키다니. 회식 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얼마나 굽었으면 와서 직접 펴주고 갔을까.’ ‘어깨 펴라고 말하면 내가 민망할까 봐 일부러 조용히 펴주고 간 거겠지.’
나는 부끄러움과 절망이 범벅된 채 ‘굽은 어깨 펴는 법’을 검색했다. 어깨 펴는 스트레칭부터 교정 기구까지 온갖 방법이 다 나왔다. 그 리스트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수영이었다. 물을 좋아해 언젠가는 배우고 싶은 운동이었고, 수영을 하면 어깨가 넓어진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굽은 데다 좁기까지 한 내 어깨를 위한 맞춤 운동이라고 확신했다.
6월 3일, 그렇게 나의 수영 생활이 시작됐다. 첫날 물속 호흡법 ‘음~ 파!’를 배웠고 물밖에 걸터앉아 발차기를 했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첫 수업의 낯섦과 어색함을 압도할 만큼 물에 있는 게 즐거웠다. 여름이면 냇가에 나가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도 물결처럼 살랑살랑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출근 전 아침 7시 수업을 듣기 위해 나는 6시에 일어난다. 중학교 때부터 아침밥을 포기하고 10분 더 자는 걸 택했던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기상시간. 그런데 지난 두 달간 휴가와 생리 때를 빼곤 수영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엄마도 남편도 우리 애들도 어쩌지 못한 내 30년 넘는 늦잠의 역사를 수영이 단칼에 끊어낸 것이다.
월, 수, 금요일 세 번 수영으로 일주일 전체가 즐거워진 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수영 수업을 받은 날은 수업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고, 수업이 없는 날은 다음날 수업을 기다리며 설렌다. 월요일 출근에 대한 두려움보다 월요일 아침 수영 수업에 대한 기대로 일요일 저녁마저 즐거워졌을 정도. 수영 수업이 있어서, 수영 수업이 없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두 달 전 회식에서 회사 선배가 왜 내 어깨를 펴줬는지 나는 아직도 묻지 못했다. 그 선배는 기억조차 못할 거다. 그런데 지난달 나는 그 선배가 다른 회사 동료의 어깨를 펴주는 걸 우연히 봤다. 그 동료는 회사에서 ‘모델처럼 걷는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꼿꼿하게 걷는 사람. 작은 키에다 상체를 숙이고 다니는 나 같은 쭈구리와 정반대 유형이다.
‘아니 그럼 내 어깨를 편 것도...’ 나는 얼떨떨했다. 나를 그토록 심란하게 만들어 수영장으로 달려가게 했던 그 어깨 펴주기가, 선배에게는 그저 동료에 대한 친근감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어깨를 편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선배에게 참 고맙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으며 모든 요일이 즐거운 신세계가 열렸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수영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