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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Aug 24. 2020

억척스러운 아내

아내

낮이 슬금슬금 짧아지자 아침이 엉금엉금 늑장을 부린다. 

아침 여섯 시, 세상은 아직 잠든 이 시각에 아내와 나는 두툼한 옷을 입고 현관을 나섰다. 산자락은 밤새 내린 어둔 기운에  깜깜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개밥바라기가 시리게 깜박인다. 혼자라면 무서울 늦은 새벽이지만 둘이라서 든든한 이른 아침에, 우리는 오솔길에 쌓인 어스름을 숫눈밟이처럼 헤치며 산을 오른다. 


아침에 산에 오르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아내의 뜻이다. 예전부터 아내는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산에 가자고 졸랐으나 나는 미적거리며 마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다.  


아내는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새 일을 시작했다. 낮에도 이미 하는 일이 있는데 투잡을 한답시고 생활정보지를 훑어보더니 이 새벽일을 하는 것이다. 아내는 3교대로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일도 알아보고, 새벽 2시까지 일하는 통닭집도 알아봤었다. 이 일들은 위험하고 무리라서 내가 반대하니, 바로 집 앞에 있는 가게를 알아보더니 거기서 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곳은 붕어빵 재료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곳이다. 먼 곳이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말릴텐데 집 앞 건물이라 그 이유로는 말릴 수가 없었다. 

  

2시 40분에 아내와 내 핸드폰의 알람은 배고픈 젖먹이처럼 칭얼거리며 울어댄다. 3시에 아내가 일하러 가면 나도 차마 잘 수가 없어 깨어있는다. 그러나 온전히 깨어있지는 못한다. 책도 보고 기도도 하지만 깜박 잠이 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괜스레 아내에게 미안하다.


6시, 아내가 땀을 흘리며 돌아와서는 산에 가자는데 어떻게 마다하겠는가!  저번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있는 어둔 산길을 조용히 걷는다. 창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무섬보다는 경이로움이 감싼다. 산 정상에 오르면 저 아래로 붉은 기운이 감돈다. 해는 아직 땅 아래 있건만 주체하지 못하는 밝은 기운을 마그마처럼 게워내 구름이 울렁인다. 아, 시작이다. 매일 새로운 하루를 주시는 신을 찬양하며 감사한다. 


우린 가진 게 별로 없다. 나이 사십이 넘었어도 아이도 없고 집도 없다. 비빌 언덕도 없다. 양가 집안도 변변하지 않고 잘 나가는 친척도 없다. 그러나 가진 것도 참 많다. 둘 다 직장에 다니고 몸과 마음이 멀쩡하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으며 산다. 


이번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것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자금이 필요했고 모자란 부분은 대출을 받았다. 아내는 이 빚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궁리를 하던 중 새로운 일거리를 찾은 것이다. 붕어빵의 재료인 팥소와 밀가루를 반죽하여 각각 봉투에 담는 작업이다. 시간당 7천 원, 하루 21,000원이다. 그 돈을 받는 내 손이 참 부끄럽다. 공무원의 아내로서 부끄럽지 않게 해 줘야지...


치약을 절대 그냥 버리지 않고 튜브를 잘라서 그 안의 치약을 다 쓴 후에 버리는 아내다. 그런 생활이 너무 궁색스러워 다투기도 하지만 말리지는 못한다. 

얼마 전 아내는 가슴에 있는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가슴에 혹이 5개 있어 조직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판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중에 2개는 크기도 10mm 정도로 크고 모양도 불규칙하여 암으로 변할 우려가 있으므로 제거하는 게 낫겠다고 하여 수술을 받았다. 아직 한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몸이 약하기에 더 악착같이 몸을 돌보는 아내. 그래서 힘이 들어도 아침에 운동을 하자는데 어찌 아내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하루의 해를 산 정상에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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