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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나라의 김복동 씨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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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씨는 창피하지 않다.


몸에 착 달라붙는 사이클 복을 입고 땀을 흘리고 있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김복동 씨가 입고 있는 사이클복은 공기저항을 줄여 최대의 운동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체온유지 효과도 있는 꽤 비싼 가격의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했다. 덕분에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서 땀이 계속 흐르고 있지만, 그보다도 김복동 씨는 싸이클복의 신축성을 시험하듯 부풀어 도드라진 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시작부터 썩 내키지 않는 라이딩이기는 했다.

김복동 씨가 속한 라이딩클럽 ‘업힐지옥’에 몇 안 되는 여성 회원 중 한 명인 소희 씨. 실제 라이딩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혼자 라이딩하는 사진만 올리는 유니콘 같은 존재인 그녀가 이번 주말 팔당 라이딩에 참여한다는 댓글을 단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댓글에는 남성 회원들의 욕망이 하트의 모양으로 수두룩히 달려 있었다.

김복동 씨는 여느 회원들처럼 자신도 그렇게 싸 잡히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하트를 누른 사람들을 각별히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마지못해 하트를 누르면서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 온라인 공간에서 아무리 떠들고 알랑방귀를 뀌어봤자 아무 소용없다. 실제 라이딩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등이 되어주자.’


김복동 씨는 바람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근처에서 함께 페이스를 지켜주고 바람을 막아주자. 혹시라도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녀를 도와주자. 김복동 씨는 간단한 응급처치법과 사이클 수리법도 유튜브를 통해 상세하게 연습했다. 그리고 주말의 라이딩을 위해 오늘 휴가까지 쓰고 사이클을 끌고 나섰다. 미리 지금부터 페이스를 올려두어야 주말 라이딩에 무리 없이 그녀를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복동 씨는 지난겨울 동안 너무 오래 사이클을 타지 않았다.


사이클복을 뚫고 나올 정도로 배가 솟아있었고, 겨우내 자동차 액셀을 밟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두 다리는 부쩍 가늘어져 있었다. 소희 씨 앞에서 멋져 보이고 싶다는 의욕만 가지고 시작한 김복동 씨의 라이딩은,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못되어 한강 시민공원 잠원지구의 어느 벤치에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저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르려던 것이다.


김복동 씨도 벤치에서 1시간이나 잘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배를 쪼으는 비둘기의 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아무렇게나 대충 던져둔 삼백 칠십만 원짜리 자전거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카페 테이블에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 있다는 K-도덕이 외신에 소개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영상에 달렸던 댓글도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하지만 자전거는 참지 않지>

<여기는 엄복동의 나라 대한민국>


김복동 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강시민공원을 2시간 동안 헤매다가 결국 포기했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확인하고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김복동 씨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김복동 씨는 딱 붙는 사이클복 때문에 도드라진 배와 중요부위를 수줍게 가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경찰이 압구정역까지 데려다준 덕분에 김복동 씨는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엄복동의 나라답게 없어진 것은 자전거뿐, 머리맡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스마트폰과 지갑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김복동 씨는 이렇게 자전거 없이 사이클복만 입고 지하철에 타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아 택시를 탈걸… 후회했지만 이미 지하철은 동호대교를 건너가고 있었다.


김복동 씨는 주말 라이딩의 참석 댓글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어차피 자기가 안 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기는 할 것이다.


김복동 씨는 그저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을 뿐이다.

소희 씨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희 씨가 지금껏 사진만 올린 것은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보정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쯤 아주 쉬운 일이니까.

이번 주말 라이딩 후기글에 그동안 올린 사진과는 영 딴판인 소희 씨의 모습과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남성회원들의 달콤한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대하며 김복동 씨는 다시 숨을 들이마셔 배를 넣었다.


김복동 씨는 내일부터는 뱃살을 빼기 위해 동네 러닝크루 활동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요즘은 남녀가 어울려서 달리는 러닝크루가 인기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은 아니라고 괜히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김복동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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