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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by 보싸

*이 이야기는 전작 <빈센트와 클로드>의 후기를 가장한 순수한 픽션이며,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진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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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몇 번이나 브런치 화면을 새로고침했는지 모르겠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메뉴아이콘에 새로운 알림을 가리키는 녹색 점이 표시되어 있었고, 이번에도 모자란 글에 감사한 하트들이 간헐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이번에 쓴 글은, 요즘 브런치에서 진행되는 저작권 공모전을 목표로 쓴 단편소설이었다. 신나게 그리다가 모델이 내려버린 바람에 미완성이 된 크로키를 모티브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크로키를 하다가 중단하고 생각을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글을 쓰면서 K-막장멜로드라마를 생각했다.

애틋한 멜로로 이어지는 듯하다가 갑자기 저작권에 대한 법률적 용어를 나누면서 진지하게 다투는 두 남녀주인공. 나는 진지한 문어체로 저작권에 대한 공방을 펼치는 이 장면이 이 이야기를 코믹으로 만드는 포인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원망으로 포장하여 그 효과가 더 잘 나온다며 혼자 신나 했다.

저작권법을 뒤지고 저작권에 관련한 판례를 검색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예전에 한 후배의 저작권 관련된 소송을 도와준다며 해당 문서들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작권에 대한 설명이 진지하고 정확할수록 주인공들의 연기톤이 더 빛나고 그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빛나는 아이디어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신이 나게 읊어주는 주옥같은 대사들을 듣던 아내는 도대체 어느 포인트가 웃긴 거냐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의 웃음포인트를 알아채고 함께 웃어주는 이웃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 그런데 왜 하트만 달리지??


물론 나도 댓글을 다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

요즘 그래도 노력을 해서 달아보려고 하고 있지만, 이동 중에 글을 읽고 미처 댓글까지 달 만한 여건이 안되어 하트만 겨우 누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하지만 저는 활자 중독이라 여러분의 글을 마침표 하나까지 안 빼놓고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들).


그런데 자기도 댓글 잘 안 달면서 이전 글 <빈센트와 클로드>에는 구질구질하게 왜 유독 댓글에 연연하는가 하면, 나의 유머코드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당황과 슬픔을 곁들인 외로움의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세수 상쾌하게 하고 맨 정신으로 다시 읽어보니 아내의 이야기처럼 이게 웃어야 되는 글인지, 진지한 글인지 헷갈렸다. 누가 봐도 댓글을 달기 애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 댓글을 달아야 할지, 진지한 댓글을 달아야 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바보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뭔가 감동을 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분노라도 선물해서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막 어떻게 해주고 싶은 변태 같은 충동이 나에게 있다. 그래서 웃기려고 친 대사에 아무도 반응이 없으면 식은땀이 난다. 따뜻함과 평안, 공감과 웃음을 주는 훌륭한 브런치 작가님들과는 소양의 차이가 소양강댐에 갇힌 물만큼 엄청나게 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좋은 작가가 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재미없는 글 어렵게 시간 내서 읽어주시고 하트까지 달아주시는 분들에게 삐진 것 같아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절대로 아니고, 나는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설가지망생 B는 여기까지 쓰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늘 글이 잘 풀릴 수는 없지.

나는 아직 멀었고 글을 쓰는 것은 참 어렵구나.

특히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구나.


B는 오늘도 생각하며 쓸쓸히 지하철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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