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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방구석5분혁신.마케팅&세일즈]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그들은 상품을 팔지 않는다. 상품을 욕망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할 뿐. 거대한 로봇의 태엽 감는 소리, 코끝을 맴도는 낯선 향기, 예상을 뒤엎는 맛의 즐거움.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구매는, 그 세계를 다녀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표가 된다.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던 공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익숙한 문법은 소거된다. 거대한 기계 거미가 다리를 꿈틀대고, 정체 모를 생명체가 공간의 맥박처럼 숨을 쉰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이 기묘한 풍경 속에서, 정작 팔아야 할 상품은 무심한 오브제처럼 놓여있다. 이곳은 방문객의 지갑이 아닌,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상품을 위한 배경에서, 서사를 위한 무대로


전통적인 상업 공간의 목적은 명확했다. 고객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유도하고, 상품의 매력을 극대화하여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것. 공간은 상품이라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충실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역할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온라인이 가격 비교와 정보 탐색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한 지금, 오프라인 공간은 다른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서사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공간은 더 이상 상품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오히려 상품이, 그 거대한 서사를 현실 세계에 묶어두는 작은 닻이 된다. 사람들은 제품의 기능 때문이 아니라, 그 제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공간이 남긴 강렬한 인상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른다. 공간이 주인공이 되고, 상품은 그 경험을 기념하는 아름다운 ‘굿즈’가 되는 것이다.


감각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


이러한 철학은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전개하는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각기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시각적 충격과 지적 호기심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는 후각적 서사를 펼친다. 매장을 채우는 독특한 향기는 보이지 않는 건축물처럼 공간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그 향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설치 미술은 이야기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향수는 더 이상 뿌리는 액체가 아니다. 공간을 채우는 서사이며, 손에 쥐는 조각이다.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는 미각의 문법을 해체한다. 디저트의 외형과 맛의 예상을 뒤엎으며, 먹는 행위를 하나의 유희이자 발견의 과정으로 바꾼다.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케이크를 자르는 순간의 긴장감, 입안에서 펼쳐지는 의외의 맛과 질감의 조화.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잘 짜인 퍼포먼스처럼 방문객의 기억에 각인된다.


공간의 새로운 가치, ‘인상의 수익률’


이들의 시도는 비즈니스의 평가 기준을 바꾸고 있다. 평방미터당 매출(Sales per square foot)이라는 낡은 지표 대신,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강렬하게 머무는가 하는 '인상의 수익률(Return on Impression)'이 중요해진다.


잘 설계된 공간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미디어다. 자발적인 공유와 인증을 이끌어내고, 디지털 세계에 무수한 이야기의 파편을 퍼뜨린다. 그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브랜드 서사를 전파하는 충실한 매개체가 된다.


물건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팔기 힘든 ‘의미’를 파는 것. 그것이 공간의 새로운 존재 이유일지 모른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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