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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Mar 19. 2021

"다 짐이 부덕한 탓이요"

평범한 지방대 선배의 세상이야기 #15

사극을 보다 보면 흔히 듣는 말.


무슨 일만 있으면,

"다 짐이 부덕한 탓이요."


흉년이 오든, 가뭄이 들던

때로는 전염병이 돌게 되더라도,



"다 짐의 탓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다 임금의 탓이야?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임금의 부덕으로 인해

날씨가 안 좋아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한다는,

그런 통념적인 "미신"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가끔은 억울하지 않았을까?"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오지 않은 게 내 탓인가?

나라의 위생관념이 떨어지고,

여러 무역과 교류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전염병이 들어오게 된 부분들이

"정말 그냥 내 탓인가?"


심지어,

과학과 문화, 어쩌면 지금의 유명 학군들보다,

유명한 족집게 강사들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가장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던 왕들이,



무조건

"내 탓이요!"를 외치기에는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정말 그분들이,

모든 문제를 "다 짐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던 이유는 뭘까?


조금은 생각을 바꿔서,

정말 내 탓이라고 완전히 생각했기에,

그렇게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건 누구탓 저건 누구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기보다,


"내가 잘못한 게 없을까?"라는 점을 먼저 생각하신

"지혜"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너무나 유명한

"자신을 알라"라는 테스 형의 말이나,

"변명이 많은 사람은 그 어떤 것도 잘하지 못한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처럼,

 

너무나 많은 분들이 하나같이 말하셨던,

그리고 다음을 위한 "명언"으로 남겨두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기"



그분들이 하나같은 같은 말을 남긴 공통적인 이유는 뭘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역할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단순히


"저 사람이 잘못했네"

"상황이 안 좋았네"라는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내가 잘못한 부분이 없나"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


완벽히 나의 잘못이 없는 일이라 확신하더라도,


조금만 돌아보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의 착오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아주 간단하게

과실이 100프로인 교통사고도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무의미하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

분명 인과관계를 따져야 하고,

정확히 그 문제를 수정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하지만 가장 먼저,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기 이전에,

나 자신의 착오를 먼저 되돌아본다면


물론 스스로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호구"로 만들 가능성도 있겠지만,


책임을 남의 것으로 돌리고

그 전가를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결국엔 "속 시원한 결론"으로 끝나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


남 탓하기, 또는 상황 탓으로 문제로 넘겨버리는 것은

결국 "적"을 만들어 낼 수도,

또 이후에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도

결국은 원점 일수밖에 없으니까.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일들이 슬쩍 넘어가기는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유기체처럼 돌아가야 하는 사회에서는

그 대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나 습관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내 탓이요"를 외치는 것은

또 다른 책임전가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잠시나마, 멈춰 서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어쩌면 이런 방법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또 다른 해결방법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숨어있던 근본적인 문제를 말해 주기하니까.


그렇게 한걸음의 멈춤은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관계에 까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후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갈 힘을 마련해 주기도 할 테니까.  


"다 내 탓이라 그러면, 전부 내 흠이 되는 거잖아"

"나만 문제 있는 사람이 되면 어떡해"


아주 오래전,

골프공이 만들어졌을 때

그 모양은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데.


크기는 비슷했지만,

표면은 매끄러운 상태였던 거지.


"아무런 티 없이 깨끗한 골프공."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공을 더 멀리 정확하게 보내고 싶어 했어.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일부러 공에 흠을 내기 시작했어.

울퉁불퉁한 홈을 만들었지.


우리가 딤플이라고 말하는

골프공에 파인 작은 홈은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했고,


훨씬 더 멀리 공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어.


그 골프공에 생긴 홈들은,  더 이상 "흠"이 아니었던 거야.



때로는 "우리"라는 골프공에

여기에 찍히고, 저기에 파인 흠들이 조금씩 생길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들은

스스로를 더 높게 또 더 멀리 보내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자신의 잘못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그것들을 바꾸어 나가는 노력을 택하는 것과,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의 잘못을 벗어나기 위해

남 탓으로 돌리는 방법들이

아주 오래 지속되어 결국 삶으로 차곡차곡 쌓여 나간다면.


그 차이가 만드는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


분명 지속적인 발전의 변화는,

스스로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고

더해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니까.


시선의 변화



"지금 이 문제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


그 작은 변화는, 분명 너무나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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