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6 남겨진 풍경

[1부. 빛의 제국]

by 새보음

Ch.6 남겨진 풍경



퇴원은 사고 후 5일째에 이루어졌다.


왼쪽 무릎의 타박상은 회복 중이었고, 뇌의 부종은 빠지고 있었지만 괴사 된 V1은 당연히 그대로였다. 닥터 정이 퇴원 시 재활 프로그램 안내서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어 누군가 읽어줘야 했다. 이 사실 하나가 그때의 나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텍스트를 자기 눈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


복도를 지나는데 옆 병실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지나가며 설명했다. "저가형 청각 BCI의 피드백 루프 고장이에요. 이번 달만 세 번째."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었다.


데이비온이 차를 몰고 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조수석에 탔다. 차 문을 여는 것은 괜찮았다. 손잡이의 위치를 손으로 찾는 데 2초. 하지만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벨트 끝의 금속 탭을 찾아 버클에 끼우는 동작. 눈이 있으면 0.5초. 없으면 탭이 손에서 미끄러지고, 버클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찾고, 각도를 맞추고 8초.


데이비온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됐어." 그것이 자존심이었는지 훈련이었는지는 모르겠다.


Palo Alto까지의 길. 101번 고속도로. 나는 볼 수 없었지만 이 길을 알고 있었다. 가속 차선에 진입할 때의 커브, 산 마테오 브릿지 근처에서 노면이 거칠어지는 구간, 윌로 로드 출구 전의 완만한 내리막. 7년간 출퇴근하면서 몸에 새겨진 경로. 차의 움직임, 가속, 감속, 좌회전, 우회전으로 지금 어디쯤인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난 지점을 지나갈 때 데이비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 속도가 미세하게 줄었다. 그것으로 알았다.


집 앞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발이 익숙한 아스팔트 도로 면에 닿았다. 걸었다. 돌 포장 현관까지의 작은 길. 돌의 간격이 불규칙해서 발이 걸렸다. 잡았다. 괜찮았다.


현관문. 손잡이 옆의 지문 패널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문의 표면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차가운 유리면에 닿았다. 엄지를 올렸다. 짧은 비프음. 1단계 인증 완료.


2단계. 홍채. 패널 위쪽 어딘가에 렌즈가 있었다. 손끝으로 문 표면을 훑었다. 동그란 돌출부에 닿았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눈을 크게 떴다. 삐. 인식 실패.


왼쪽으로 조금. 삐. 오른쪽. 삐. 위. 삐삐.


보이지 않는 눈을 보여달라는 기계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신경공학 박사가 현관문 앞에서 머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분명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뒤에서 데이비온이 헛기침을 했다.


"한마디만 하면 —"


"됐어."


각도를 약간 낮추었다. 비프음의 톤이 달라졌다. 스캔 중. 찰칵. 잠금이 풀리는 소리.


문이 열렸다. 집의 냄새가 밀려왔다.


5일간 비어 있던 집의 냄새. 환기되지 않은 공기. 그 아래에 나의 냄새. 커피와 책과 전자기기의 미세한 열. 그리고 현관 왼쪽 벽의 오래된 페인트 냄새. 이것은 이전에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시각이 있을 때는 벽을 보았지, 냄새를 맡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턱.


현관에서 거실로 넘어가는 경계에 문턱이 있었다. 높이 2센티미터 정도의. 7년간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눈이 자동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니까. 발이 걸렸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비틀거렸다. 손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갔고, 벽에 닿았다.


"괜찮아?"


데이비온이 뒤에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문턱이 아니라 7년간 이 집에 살면서 문턱을 몰랐다는 사실이. 나는 이 집의 풍경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실의 가구 배치. 부엌의 구조. 침실에서 욕실까지의 동선. 하지만 그 앎은 발이 아는 것이 아니라 눈이 아는 것이었다. 발은 이 집을 모르고 있었다.


"나 혼자 돌아다녀볼게."


"같이 —"


"혼자."


데이비온이 물러섰다. 현관에 서서 기다리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발소리가 줄어들었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혼자 넘어지는 것보다 쉬웠다. 누군가 나를 부축하면, 내가 부축이 필요한 사람이 되니까.


나는 거실을 걸었다. 천천히. 발을 낮게 미끄러뜨리면서. 양말이 나무 바닥에 닿는 감촉. 바닥의 온도. 거실은 따뜻했다. 바닥 난방의 온기가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데이비온이 미리 켜두었다. 소파의 위치를 기억에서 불러냈다. 왼쪽 벽에서 1.5미터, 창문에서 2미터. 손을 뻗었다. 팔꿈치 높이에서 소파의 등받이에 닿았다.


여기 있었다. 손끝이 집의 두 번째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눈이 그린 첫 번째 것에는 없던 것들이 가득한.


소파에 앉았다. 익숙한 쿠션의 감촉. 나는 이 소파에서 매일 밤 노트북을 열고 어머니의 데이터를 확인했었다. 오른쪽 팔걸이에 커피 잔을 놓고, 왼쪽에 태블릿을 두고. 지금 오른쪽 팔걸이를 만지니 커피 자국이 손끝에 느껴졌다. 거칠거칠한.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미세한 질감이 손끝에서는 선명했다.


이것도 보상.


멈추자.


부엌으로 갔다. 6보. 기억보다 가까웠다. 시각적 거리와 발로 재는 거리는 달랐다. 아일랜드 카운터의 모서리가 허리에 닿았다. 높이는 같은데 내가 구부정하게 걷고 있었다. 시각이 없으면 자세가 달라진다.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진다. 충돌을 대비하는 자세.


수도꼭지를 찾았다. 물을 틀었다. 물소리. 잔을 찾아야 했다. 상부장의 위치를 기억에서 불러냈다. 손을 뻗었다. 손잡이에 닿았다. 열었다. 잔의 줄. 손으로 더듬어 하나를 꺼냈다.


잔을 수도꼭지 아래에 기울였다. 물이 잔에 들어가면서 소리가 변했다. 빈 잔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높고 가늘다. 잔이 차오르면서 소리가 낮아지고 두꺼워진다. 나는 이 소리의 변화로 잔이 얼마나 찼는지를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아르티스는 태어날 때부터 해왔을 것이다.


물을 마셨다. 우리 집 수돗물의 맛. Palo Alto의 수도는 Hetch Hetchy 저수지에서 온다. 요세미티의 눈 녹은 물로 미국에서 가장 깨끗한 수돗물 중 하나다. 이전에 '깨끗하다'는 관념으로만 알던 것이 혀 위에서 확인되었다. 미네랄이 적은 물의 부드러움. 차갑지만 날카롭지 않은.


집을 한 바퀴 돌았다. 침실. 욕실. 서재. 각 방에 도착할 때마다 냄새가 달랐다. 침실은 섬유유연제와 체취가 섞인 냄새. 욕실은 비누와 석회질. 서재는 종이와 먼지와 전자기기. 시각이 있을 때 이 집은 하나의 집이었다. 시각이 없으면 냄새별로 구분되는 여러 개의 공간이었다. 냄새에는 지층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아래에. 코가 고고학자처럼 한 겹씩 파내려 가고 있었다.


서재에서 나는 책상 앞에 섰다. 모니터가 있을 것이다. 키보드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진이 아니, 사진은 사무실에 있다. 여기는 집. 하지만 책상 위 왼쪽에는 어머니가 쓰던 찻잔이 있었다. 내가 가져온 것이었다. 인디애나의 집이 정리될 때 가져온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


손이 책상 위를 더듬었다. 키보드. 마우스. 마우스 패드의 가장자리를 넘어서. 무언가에 닿았다. 둥글고 작은 도자기의 감촉. 어머니의 찻잔.


빈 잔을 들어 올렸다. 가벼웠다. 입가로 가져갔다.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오래전에 세척한 잔이었으니까. 하지만 잔의 입술에 닿는 도자기의 얇은 감촉이. 어디선가 느꼈던 것 같았다. 어머니가 차를 마시던 모습. 내가 옆에 앉아 있던. 인디애나의 부엌.


어머니의 찻잔.


시각이 있을 때 나는 이 잔을 매일 보았지만 만지지는 않았다. 가끔 먼지를 털어주는 것 외에는 손대지 않았다. 사진처럼 거기 있는 것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지금은 만져야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책상 위 왼쪽. 원래 있던 자리에. 물론,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다.


.


.


.


퇴원 후 첫 주.


데이비온이 일상 지원을 위한 간병인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대신 CORTEX의 Aria 시스템을 집에 설치했다. Aria는 음성으로 환경 정보를 전달해 주는 AI이다. "현재 실내 온도 22도. 오후 3시 47분. 창밖 흐림." 이런 식으로. 전체 기능을 켜면 조명, 냉난방, 가전, 보행 안내, 장애물 경고, 자동 배달 주문까지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Aria를 최소한으로 설정했다. 시간과 날씨만. 나머지는 직접 해야 했다. 이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것이었다. IRIS를 설계하려면,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의 인지를 내가 직접 경험해야 했다. 시각이 없을 때 뇌가 세상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어떤 정보가 부족하고, 어떤 정보가 보상적으로 증강되며, 어떤 처리가 병목이 되는지. 이것은 아르티스의 논문에 데이터로 있었지만, 데이터와 경험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이 과학자로서의 합리적 판단이었는지,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의 포장이었는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아마 둘 다.


그래도 Aria는 가끔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했다. "거실 창문으로 석양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볼 수 없는 석양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루틴을 시도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욕실까지 7보. 세면대의 위치. 칫솔과 치약. 치약의 뚜껑을 여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칫솔 위에 적정량을 짜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짜거나 빗나갔다. 닷새쯤 지나서 왼손의 검지를 칫솔 모 끝에 대고 그 옆에 치약을 짜는 방법을 터득했다. 손가락이 가이드.


샤워가 가장 어려웠다. 욕실 타일이 맨발에 차가웠다. 거실의 난방이 닿지 않는 곳. 수온 조절 레버를 돌렸다. 뜨거운 물이 먼저 쏟아졌다. 어깨에 닿자 반사적으로 물러났고, 발이 젖은 타일 위에서 미끄러졌다. 벽을 잡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빨라진 것을 느꼈다. 비슷한 모양의 샴푸와 컨디셔너의 용기를 손으로 구분해야 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지만 물줄기 아래에서는 구분이 어려웠다. 둘 다 짜서 머리에 올렸다. 순서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조차 무능력했다.


옷 입기. 이것은 데이비온이 옷에 점자 태그를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대신 옷장을 재구성했다. 왼쪽부터 셔츠, 바지, 재킷. 손을 넣으면 직물이 먼저 말했다. 면은 시원하고 매끄러웠다. 울은 거칠고 두께가 있었다. 셔츠의 칼라는 접힌 형태로 식별했고, 단추의 수로 종류를 구분했다. 두 개면 폴로, 여섯 개 이상이면 드레스 셔츠. 색으로 고르던 옷을 이제 손으로 읽었다. 이전의 나라면 옷의 색과 재질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데이비온이 코디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공적인 이미지의 일부였으니까. 지금은 색 조합이 의미 없어졌다.


사흘째에 데이비온이 찾아왔다. 문을 열고 나를 보더니 2초간 말이 없었다. "뭐?" 내가 물었다. "셔츠가 뒤집혀 있어." 솔기가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3일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있었으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셔츠를 벗어 뒤집어 입었다. 데이비온이 그동안 현관에 서서 기다렸다. 이런 침묵이 위로보다 어려웠다.


의미 없어진 것들의 목록이 매일 늘어갔다.


거울. 의미 없다. 거울 앞에 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욕실에 들어가면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에 새겨진 습관.


색. 의미 없다. 세상에서 색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색이 사라진 것이다. 꽃이 여전히 빨간 것을 나는 알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올리브 나무의 잎이 은빛인 것을 기억하지만 볼 수 없었다. 기억 속의 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할 것이다.


퇴색.


어머니의 얼굴이 퇴색했듯이. 사진이 없으면 윤곽조차 불확실해졌듯이. 이제 사진이 있어도 볼 수 없다. 어머니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 기억은 매일 조금씩 흐려지고 있을 것이다.


새벽 3시. 잠이 오지 않는 밤. 어둠이 방 안에 가득했다. 눈을 뜨든 감든. 어둠이 가득한 방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기억 속의 사진. 인디애나의 집 앞마당. 어머니와 나. 노을.


윤곽은 있었다. 하지만 세부가 빠져 있었다. 어머니의 눈 모양. 코의 각도. 입술의 두께. 이 디테일들이 이미 흐려져 있었다.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수채화였다. 떠올릴 때마다 물이 번졌다. 사고 전에도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진이 있었으니까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사진을 볼 수 없다.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흐려지는 기억 속에만.


기억을 되살리는 기술을 만든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자기 기억에서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갔다. 7보가 아니라 다른 경로. 복도를 통해. 벽에 손을 대고 걸었다. 벽의 감촉이 방마다 달랐다. 침실은 벽지. 복도는 페인트. 서재는 나무와 종이의 감촉.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이 켜지는 소리. 그리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음성 보조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두었다. 퇴원 후 첫 번째로 한 일이었다. 음성 명령으로 파일을 열 수 있었다.


"어머니 데이터 파일 열어."


화면이 바뀌는 소리. 매일 밤 열던 파일. 잡음투성이의 EEG 데이터. 이제 데이터를 볼 수도, 그래프를 볼 수도 없었다. 음성 보조가 수치를 읽어주었지만 수백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청각으로 처리하는 것은 시각으로 그래프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데이터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어머니의 데이터도 보지 못하고.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열린 노트북 앞에. 볼 수 없는 화면 앞에. 오래.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겠다. Aria에게 시간을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올리브 나무의 소리가 들렸다.




뒷마당의 올리브 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건조한 잎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내는 사각거림. 이 소리를 나는 7년간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의식적으로 들은 적이 없었다. 올리브 나무가 소리를 내는 것을 몰랐다. 시각이 있을 때 나는 그 나무를 '보았다'. 은빛 잎. 뒤틀린 줄기. 시각적 이미지로 등록하고 넘어갔다. 나무가 소리를 내고, 바람에 따라 그 소리가 바뀌고, 밤과 낮에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몰랐다.


7년.


7년 동안 같은 집에 살면서 나는 이 나무의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서재의 창이 열려 있었나. 환기를 위해 열어둔 것이 닫히지 않았을 것이다. 올리브 잎의 사각거림. 바람이 세지면 소리가 커지고, 약해지면 소리가 줄어들었다. 이 패턴이 호흡 같았다. 나무의 호흡. 이런 생각을 이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상적이니까. 올리브 나무의 잎이 바람에 의해 기계적으로 진동하는 것이지, 호흡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밤 그 소리는 호흡이었다.

나 외에 이 집에서 살아 있는 것의 소리.



나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들었다.


오래.


.


.


.


집으로 돌아온 지 2주째.


IRIS 프로젝트가 나의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음성 보조 소프트웨어로 논문을 들었다. 데이터 수치가 귀를 통해 흘러들어올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래프를 눈으로 스캔할 때는 놓치던 패턴이 숫자의 리듬 속에서 잡혔다. 수치가 올라가는 구간에서 음성의 억양이 미세하게 바뀌었고, 그 변화가 이상치(outlier)를 찾아냈다. 시각적 스캐닝이 놓치던 것을 청각이 잡아내는 순간이었다. 팀의 홀로그래픽 회의에 음성으로만 참여하고, 아르티스와 매일 1시간씩 데이터를 논의했다. 시각이 없어도 과학은 할 수 있었다.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좌절스러웠지만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에 매달렸다.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 IRIS의 설계가 매일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나를 지탱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나는 과학자였다. 과학자가 아닌 달시 태드는 아직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르티스와의 통화에서 그녀는 데이터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내 상태를 묻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것이 냉담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과학자로서만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가 읽은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가끔 통화의 끝에서 아르티스가 짧게 물었다.


"올리브 나무 소리 들어요?"


"... 들려."


"어떤 소리예요?"


나는 설명하려고 했다. 사각거리는 소리. 바람에 따라 변하는. 하지만 말로 하면 부족했다. 소리를 언어로 번역하면 소리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직접 들어봐."


"언젠가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대화가 과학 토론의 사이사이에 있었다.


.


.


.


내가 '본' 마지막 풍경들이 기억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Moscone Center의 유리벽에 반사된 도시. 101번 고속도로의 가드레일 반사판.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의 가로등. 깨진 유리 너머의 주황색 원. 이것들이 내가 시각으로 마지막으로 등록한 이미지들이었다.


하지만 시각이 사라진 뒤에 다른 종류의 풍경이 쌓이고 있었다. 소리의 풍경. 병원의 밤소리. 앰뷸런스의 사이렌. 집의 문턱에 발이 걸리는 촉감. 물이 잔에 차오르면서 소리가 낮아지는 것. 올리브 나무의 호흡. 어머니의 찻잔의 도자기 감촉.


이 풍경들은 시각적 풍경과 질이 달랐다. 시각적 풍경은 스냅샷이었다. 한 순간에 전체가 포착된다. 소리와 촉감의 풍경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소리는 지속하고 변하고 사라진다. 촉감은 닿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이 풍경들은 저장되지 않는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다. 머릿속에만 남는다.


그리고 머릿속의 것은 퇴색한다.


어머니의 얼굴처럼.


나는 이 깨달음을 또 분석했다. 시각적 기억과 비시각적 기억의 부호화 방식 차이. 에피소드 기억의 감각양상별 퇴색 속도. 이것을 IRIS의 설계에 활용할 수 있을까. 뇌가 시각 없이 기억을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올리브 나무의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날은 바람이 강했다. 잎사귀들이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호흡이 아니라 대화처럼. 나무가 바람에게 하는. 바람은 매번 같은 질문을 했고, 나무는 매번 다른 대답을 했다.


나는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고 들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고 경험하는 것. 분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 나에게 이것은 과학을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턱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문턱은 항상 거기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보는 것에 가려서. 보는 것이 사라지자 발이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문턱의 높이. 바닥의 온도. 복도의 폭. 벽의 질감.




눈이 가렸던 세계가 조금씩 다른 감각으로 다시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상'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다. 아직. 하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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