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이 길을 누린다. 지하철에서 일부러 내려 여기를 거닐다 보면 20분이라는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후딱 가버린다. 벚꽃이 한참 피어나고 떨어질 즈음에 벚나무는 이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파리가 보이면 이 화려한 꽃 무리를 못 볼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어느 날 간밤에 온 비로 길이 채 마르기도 전인데 아뿔싸 꽃잎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품고 저 끝을 바라보니 평소 보기 어려운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떨어진 꽃잎이 만들어내 또 하나의 장관은 마치 천국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이 이 꽃잎들을 지르밟고 갔건만 하나도 흉해 보이지 않았다. 밟힐수록 보도블록과 하나가 되어서 더 단단하게 그려낸 그림은 완벽한 작품이었다.
시선이 머무르는 사진 중앙의 저 끄트머리를 바라보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본다. 저기 저 곳이 끝일 것 같은데 거기 가보면 또 다른 저기가 보인다. 하지만, 평생을 걸어도 달려도 못 갈 것 같은 그곳에 다다렀을 때는 어떻게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저 한숨만 쉬고 바라봤던 그 길 끝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벚꽃 잎은 이 길을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고급스러운 카펫이 되어 줬다. 비명도 없이 우리 발아래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꽃잎들이 보내는 응원가를 들어보라. 이제 우리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딜 때이다. 그렇게 힘들게 내디딘 그 걸음이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다.
봄날 비 온 뒤 사방에 떨어진 이 꽃잎들이 사랑스럽다. 내가 꽃이라면 이렇게 되고 싶지 않을 텐데, 모든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져버리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