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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3. 2023

의외로 일이 안 되게 하는 습관

'No problem'의 의미를 알기까지

'No problem!'

이 말을 들으면 내 문제는 더 커졌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렇게나 문제가 많은데? 공사는 기간 안에 다 마칠 수 있을까? 곧 기공식 일정이 잡혀 있는데 공사 퀄리티는? 왜 초기 계획과 달리 요구되는 자재가 늘어가지? 엔지니어는 왜 연락이 안 되지?


정말로 이해가 잘 안 됐다. 한동안은 내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필리핀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오지 마을, 그곳에는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당시 내가 속한 NGO는 학교를 건축하는데 필요한 자재를 지원했고, 그 지역 Municipal, 즉 지방자치에서는 인력과 기술을 지원했다. 그렇게 최종 학교가 완공되면 교육청에서 교사를 파견했다. 이 삼각의 균형이 적절히 이뤄질 때 좋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학교 건축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말 그대로 오지라 차로 자재를 옮길 수 있는 구간은 극히 일부였다. 심한 곳은 전기나 물공급도 원활하지 못하니 공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 하나 공사를 위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없고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성질이 많이 급하다는 걸 필리핀에서 공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시금 알게 됐다. 조급한 마음을 내며 담당 엔지니어에게 이런 것 저런 것들을 물어보면 담당 엔지니어는 늘 '아무 문제없어요! 걱정 말아요.' 했다. 근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과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고 꿈을 키울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 좋은 일 하자고 간 그 현장에서 나는 성질을 내고 있었다. 

이런 모순이라니.


내 입장에서 필리핀 사람들의 속도가 너무 느긋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작업 진행과 일처리가 꼼꼼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현장 모니터링을 하고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고 난 뒤, 다음번에 현장을 다시 방문해 보면 피드백이 무색하게 현장은 그 상태 그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상황을 알고 싶어서 연락을 취해도 엔지니어가 답변이 없으니 답답함은 커졌다. 마감기한은 정해져 있고, 예산도 한정적이라 그때 나는 그런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엔지니어를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엄청나게 분별했다. 분별하니 내 마음도 좋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다 문득 같이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는 비슷한 상황에서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공사일이 미뤄지는 것도 자재를 더 요구하는 것도 비슷한데 왜 저 동료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둘 다 비슷한 상황인데 내가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이건 내가 뭔가를 고집하고 있는 걸까? 하며 돌아봐졌던 것 같다. 


"00 씨는 어때요? 괜찮아요?"라는 내 물음에 동료는 "네 뭐 조금 답답하긴 한데 이 나라 특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맞춰가야죠."라고 답했다.


그렇다! 그 나라 특성!

한국에서 나고 자라온 내가 한국의 기준으로 판단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 현지 상황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정말이지 그때 처음 들었다. 왜 그 생각은 못 했지? 그때서야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됐는데 그들은 일할 때뿐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물론 내 기준이다. 아마도 무더운 날씨와 오랫동안 살아온 습관의 영향인 것 같았다. 필리핀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괜스레 한국인이 와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하면서 문제제기를 하니 답답했겠다 싶었다.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을 거다. 


게으르다는 게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을까? 우리 집에서 나는 게으른 편으로 속해서 어릴 때부터 나는 약간 게으른 편이구나 생각하며 자랐다. 근데 사회를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니 사람들은 내가 남들보다 좀 빠르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내가?' 하면서 반문하곤 했다. 게으르다. 부지런하다. 빠르다. 느리다. 이런 인식은 정말 상대적인 것이라 딱 이거다 정할 바가 없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내 주관적인 판단을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니 좋은 일 하자고 간 그곳에서 화가 났다. 


그 엔지니어는 책임감이 없고, 게으른 사람이었을까? 그걸 문제 삼은 내 기준에서 그렇게 보였던 것뿐이다. 이렇게 정리가 되니 내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여전히 현장에 가면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훅 하고 올라오기도 했지만 '아 내 기준에서 일의 진척이 많이 더딘 것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다시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스트레스받으면서 얘기하지 않으면 되는데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숱한 경험으로 이미 많이 체득한 뒤였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더 상황이 안 좋아지는 수순으로 갔다. 나는 잘하자고 한 일이 결국은 일이 더 안 되는 방향으로 가게 하고 있다는 걸 배웠다.


내 중심적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습관, 내 기준이 맞다고 주장하는 습관은 일이 되는 방향이 아니다. 

일이 안 되는 방향으로 갈 뿐.


돌아보면 내 성질 받아주며 공사를 묵묵히 진행해 줬던 엔지니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울고 웃으며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잘 마쳐졌고 학교도 무사히 완공됐다. 


엔지니어 말대로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완공된 학교 모습. 어디든 풍경이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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