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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9. 2023

이야기로 만들어진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feat. 일상이 '시')

어린이날 초등학교에 걸려 있는 현수막 글귀를 보곤 살짝 감동받았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학교는 너희가 와야 진짜 봄이야~'

어린이 병원에는 이런 현수막도 붙어 있었다. 

'하늘을 보아 그리곤 씩 하고 한 번 웃어보려무나'


삶 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들이 넘쳐난다. 회색 빛깔 같았던 순간들도 왠지 저런 몽글몽글한 글귀들을 보면 색이 환하게 칠해지는 기분이 되곤 한다. 하늘을 보라고 하면 하늘을 한 번 보게 되고 정말로 씩 하고 한 번 웃게 되니까. 누군가 나를 봄이라고 해주면 진짜 내가 봄이 된 것 같다. 봄날의 햇살. 

예전에 하루에 시 한 편은 읽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좋다니까 좋은가보다 하면서 무심코 넘겼다. 그리고 사실 고작 시 한 편인데도 그걸 매일매일 읽는다는 게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몇 자 되지도 않는 그 시 한 편을 읽을 만큼의 여유를 가지지 않는 마음이 놀라웠다. 막연하게 감수성을 높여줄 수 있나? 하고 생각만 했더니 여유를 가지고 살펴볼 동력이 없었달까.


지금 누군가 시나 문학이 왜 삶에서 필요할까 묻는다면 이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좀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고, 새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생애는 계속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표현해 내는 것은 같을 수 없다. 시는 인간의 내면, 사랑과 괴로움 또는 꿈과 좌절, 행복과 불행을 그려내거나 때로는 그 시대의 정신이나 인류의 염원을 담아내기도 한다. 사실 요즘 같은 시기야 말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이해하고 살펴보고 그걸 표현해 낼 수 있는 시는 꼭 필요한 윤활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과학자의 눈에는 '인간은 원자로 만들어진 존재'지만 시인의 세계에선 '인간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이다. 


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랄 때는 그냥 평범하게만 느껴지고 특별할 것 없던 일상의 순간들이 특별해질 때다. 일상과 언어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렇게 보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혹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상상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된다. 이 과정 자체가 나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시를 쓰든 글을 쓰든 일상을 '다르게 보기' 이게 핵심인 것 같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 보는 건 내 취향이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확장시켜 나가는 또 다른 자극이 된다. 


우연히 읽게 된 시가 오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호승-

햇살은 먼지에 불과한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는 감사한 존재구나.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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