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feat. 일상이 '시')
어린이날 초등학교에 걸려 있는 현수막 글귀를 보곤 살짝 감동받았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학교는 너희가 와야 진짜 봄이야~'
어린이 병원에는 이런 현수막도 붙어 있었다.
'하늘을 보아 그리곤 씩 하고 한 번 웃어보려무나'
삶 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들이 넘쳐난다. 회색 빛깔 같았던 순간들도 왠지 저런 몽글몽글한 글귀들을 보면 색이 환하게 칠해지는 기분이 되곤 한다. 하늘을 보라고 하면 하늘을 한 번 보게 되고 정말로 씩 하고 한 번 웃게 되니까. 누군가 나를 봄이라고 해주면 진짜 내가 봄이 된 것 같다. 봄날의 햇살.
예전에 하루에 시 한 편은 읽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좋다니까 좋은가보다 하면서 무심코 넘겼다. 그리고 사실 고작 시 한 편인데도 그걸 매일매일 읽는다는 게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몇 자 되지도 않는 그 시 한 편을 읽을 만큼의 여유를 가지지 않는 마음이 놀라웠다. 막연하게 감수성을 높여줄 수 있나? 하고 생각만 했더니 여유를 가지고 살펴볼 동력이 없었달까.
지금 누군가 시나 문학이 왜 삶에서 필요할까 묻는다면 이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좀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고, 새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생애는 계속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표현해 내는 것은 같을 수 없다. 시는 인간의 내면, 사랑과 괴로움 또는 꿈과 좌절, 행복과 불행을 그려내거나 때로는 그 시대의 정신이나 인류의 염원을 담아내기도 한다. 사실 요즘 같은 시기야 말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이해하고 살펴보고 그걸 표현해 낼 수 있는 시는 꼭 필요한 윤활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과학자의 눈에는 '인간은 원자로 만들어진 존재'지만 시인의 세계에선 '인간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이다.
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랄 때는 그냥 평범하게만 느껴지고 특별할 것 없던 일상의 순간들이 특별해질 때다. 일상과 언어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렇게 보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혹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상상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된다. 이 과정 자체가 나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시를 쓰든 글을 쓰든 일상을 '다르게 보기' 이게 핵심인 것 같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 보는 건 내 취향이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확장시켜 나가는 또 다른 자극이 된다.
우연히 읽게 된 시가 오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호승-
햇살은 먼지에 불과한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는 감사한 존재구나.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