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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Mar 08. 2024

나도 누군가의 커피 프린스이기를…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카페에선 언제나 에스프레소를 주문합니다. 


‘전용잔에 드릴까요?’


손바닥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컵받침…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그보다 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전용 컵받침 이외에 쟁반에 잔을 드는 것은 에스프레소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 작은 손잡이를 집어 올릴 때… 보기보다 묵직한 무게감과 응축된 진한 커피 향은 더없이 근사한 하루를 약속하는 것만 같습니다. 


데미타세 Demitasse, 흔히 에스프레소 컵이라고 불리는 작은 크기의 잔입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빚어, 1,400 도로 구워낸 백색의 안캅 ANCAP 잔이라면 오늘은 틀림없는 완벽한 하루입니다. 에스프레소는 전용잔에 마셔야 제맛입니다. 


‘언제부터였더라?’


이 쓰디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작고 하얀 전용잔과 은빛의 티스푼이 올려진 컵받침을 

손으로 받쳐 들고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은 

햇빛 가득한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해안 도시로 나를 데려다줍니다. 

어쩌면 이오니아 해를 혹은 지중해를 바라보는 한 멋진 남성을 꿈꾸는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커피 받침과 이쁜 전용잔.. 이건 아마도, 

누군가 바라봐주기를.. 알아봐 주기를... 말 걸어주기를... 이름 불러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이게 다 순전히 외로움 탓입니다. 


사실...에스프레소는 참을 수 없이 쓰디씁니다. 정신이 아찔합니다.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다 외로움 탓입니다. 외롭고 헛헛한, 주목받고 싶은 연극성 인격장애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로 주세요’


누군가의 커피 프린스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주문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커피 프린스이기를...




P.S.


에스프레소 Espresso는 

익스프레스 Express 즉 '빠르게'...라는 뜻 입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보다 좋은 각성제가 또 있을까요? 위장을 잃고 광고주를 얻기 위해 오늘도 나는 일용할 여섯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십니다. 



image : Lavazza.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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