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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Apr 24. 2024

[가상 인터뷰] 진주 귀걸이의... MZ 그녀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인터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레이 세이두나 틸다 스윈튼, 엠마 스톤처럼 어딘가 모르게 묘하고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가 있습니다.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 반쯤 벌린 입 사이로 립글로스를 바른 듯… 반짝이는 도톰한 입술, 핑크빛이 감도는 발그레한 두 볼.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있는 묘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한 소녀. 시대에 맞지 않게 파란색 터번과 동양풍의 옷은 입은 그녀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며시 돌리며 우리에게 무슨 말을 막 건네려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일까?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봅니다. 아!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귀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진주 귀걸이입니다. 어딘지 모를 신비한 분위기로 무언가 말을 건넬 듯 한 이 소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1665년 네덜란드로 떠납니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헤이그에 있는 창문 없고 어두운 한 조그만 방에서 입니다. 




진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내 안에 나를 지키기 때문이죠




반갑습니다. 당신은 뽀샤시한 모습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세계 최고의 초상화가 아닐까요?

과찬이세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초상화는 당연히 다빈치의 모나리자죠. 다만..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가 나오면서 그전보다 세계적으로 제 인기가 조금 높아진 것은 사실예요. 유명하다면 아마도 일반적인 초상화보다는 첫눈에 너무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뭐랄까... 좀 다가기기 쉬운 편안한 얼굴이랄까요... 그래서 아닐까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솔직히 넘사벽이죠!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때 수백, 수천번을 덧칠해서 그림의 윤관석을 희미하게 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래서 더 우윳빛깔의 뽀샤시한 표정이 나온 거죠. 모나리자에 대해 사람들이 열광하고 신비롭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아마 저를 보고도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일 거예요. 얼핏 보면 눈썹도 없어 보여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죠. 


'모나리자는 넘사벽예요... 영화 때문에 더 유명해진 거죠' 라며 겸손한 그녀


왼쪽 어깨너머로 누구를 보고 있는 건가요? 사실 당신을 의뢰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맞아요. 저는 알고 있지만… 제 신비감이 떨어질 것 같아.. 이 답변은 거부할게요…(어라! 답변거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의뢰인이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죠. 모나리자나 반고흐의 자화상도 결국 의뢰인을 알 수 없는 작품들이잖아요. 일종의 퍼스널 브랜드가 만들어진 거예요


사실 당시에 초상화 중에는 화가들이 연습 삼아 상상의 인물을 그리곤 했다는데…그럼 당신 또한 상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상상에 맡길게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초상화가 아닌 트로니 TRONIE라는 것이 유행했어요. 즉 실재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을 연습 삼아 상반신까지 그린 그림 형태인데... 저를 그린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에도 2-3 작품이 바로 이 트로니예요. 트로니는 권투선수는 우락부락하다! 발레리나는 갸름하다! 먹방러는 뚱뚱하다! 같은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것인데 화가가 생각하는 이국적인 소녀는 이럴 것이다라고 상상하며 저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죠. 


당신을 보면 역시나 커다란 진주 귀걸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 같은 소녀의 액세서리 같지 않아요

네.. 당연히 그런 생각하실 거예요. 상상화라고 하는 이유도 이 큰 진주 귀고리 때문인데... 사실 이 정도 크기의 보석이라면 왕가의 여인이나 상류사회의 귀족 정도나 할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이잖아요. 저처럼 허름한 복장의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보석이니까요…


화가 페르메이르는 당신을 특히 사랑스럽게 그렸어요

네... 분명히 저에 대한 애정이 있던 건 사실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를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하게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꼭 기억하세요. 데이트할 때 여자친구 사진 한 장만 달랑 찍어주는 남친이라면 오늘 당장 헤어져야 해요. 꽃을 선물했다면 당연히 작고 반짝이는 값비싼 무언가를 줘야 마땅하죠! 진주 귀걸이 정도요.. 그렇지 않나요?  


당신이 두른 푸른 터번이 아주 강렬해요. 패션 센스가 아주 돋보입니다. 

제 푸른 터번의 색은 울트라마린이라 해요. 눈에 확 띄고 이쁘죠? 울트라마린은 당시에 아주 값비싼 물감였어요…그래서 교회나 왕가에서 성모마리아나, 왕족을 그릴 때나 쓸 수 있는 재료였죠. 그것도 그럴 것이 청금석을 갈아서 이 푸른색을 냈거든요. 금색을 내려 금을 갈아서 물감을 만든 거와 같죠. 엄청난 돈이 들었어요. 실제로 당시에는 금보다 청금석이 더 비쌌으니까요.. 그런 비싼 물감으로 저를 그렸으니 제가 얼마나 돋보이겠어요.


그렇다면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도 저만큼 아주 신비한 화가예요. 저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남아 있는 작품도 30여 점 밖에 없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렸는데..... 생각해 보면 17, 18세기에 신윤복, 김홍도 등 풍속화 화가가 나온 것처럼... 당시가 아마도 그런 시기가 아녔을까요? 그래서 그의 그림은 우유를 따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편지를 읽은 일상의 사람들이 나오죠. 무슨 거창한 그림이 아녜요. 역사화나 종교화처럼 딱딱하지 않으니 보는 사람도 아주 편안하구요..기분좋은 상상을 자극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예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다 보니 위작 논란이 많은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위조 작품이 많은 화가로도 유명해요. 자식을 15명이나 낳았으니 음... 다산왕이기도 했어요. 


당신의 신비함은 상상을 자극합니다. 실제로 당신을 소재로 한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도 나왔는데..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1999>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페르메이르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관련해서 수많은 상상을 더 많이 넣은 거 아닐까 싶어요. 저도 아주 재미있게 봤답니다. (웃음)… 요즘은 핸드폰 케이스에도 제가 나오더군요! 이놈의 인기란… 정말!


맞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소재로 한 패러디 물도 정말 많은데

네... 아마 <모나리자>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가장 많이 패러디 되는 작품이 제 얼굴 아닐까 싶어요. 인기의 반증이겠죠. 


그녀가 말합니다. 이 놈이 인기란 정말...



당신이 유명해서 인지 그림을 손상시키려는 시도도 있어요.

네, 말씀처럼 제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런 일이 자주 있죠. 2022년 10월엔 제 그림에 머리를 붙이고 시위를 하거나 토마토 수프를 뒤집어쓰기도 했죠. 해외 토픽에서 보는 기후 운동가들의 시위였는데…어떤 면에서는 저처럼 유명한 사람만 당하는 사건이라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유명한 게 죄라면 죄죠!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글쎄요... 제가 10대 소녀라 말을 잘 못하지만, 진주는 자신의 몸속에 이물질을 세상밖으로 내보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해요. 진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내 안의 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빛이 비칩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 입술 그리고 진주귀걸이가 반짝입니다. 한참을 자리에 서서 그녀는 바라봅니다.  




image : bombom200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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