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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Jun 28. 2024

장르만...해피버스데이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생일엔 떡.국.을 먹는 줄만 알았습니다.

 

1월 1일에 태어나 철들기 전까지 다들 떡국을 먹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생일에 ‘미역국 먹었어?’ 말하면 여간 어색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복날 ‘마라탕 잘 먹었어?’ 랄까요?

 

또롱~또롱!

 

당연하게도, 1월 1일 태어난 사람은 생일축하보다 신년인사를 더 많이 받습니다. 겸사겸사겠지만 카운트다운이 울리고 밤 12시를 넘겨 새해가 되면 스테레오 타입의 문자들만 가득합니다. 단체문자와 통신사, 쇼핑몰 광고문자까지 받으니 나만을 위한 생일축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흔히 하는 친구들과의 생일약속도 1월 1일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미리 할라치면 연말이라 이게 송년회지 생일모임이 아닙니다. 주인공이 못됩니다. 신년이 되면 또 새로운 마음가짐이랍시고 다들 금주, 금연을 새해 계획으로 잡는 몹쓸 습관 때문에 술도 한잔 얻어먹기 힘이 듭니다. 선물도 겹쳐 어렸을 때는 세뱃돈으로 가름하더니 성인이 되어서는 모두 연말연초 지출이 많아 선물 하나 받기도 민망합니다. 그렇게 생일은 새해첫날에 밀려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온전히 나만 축복받는 기쁜 날였으면 좋겠는데 다들 행복해하니 소중한 무언가를 1/n로 나눠갖는 기분입니다. 손해입니다. 천상 박애주의자는 못되나 봅니다. 이게 다 못된 성격 탓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생일은 장.르.만.…해피버스데이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아! 또 생일이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는 경우 말이죠. 꼭 1월 1일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찰수록 생일에 대한 설레임이 점점 사라지고 무뎌집니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원치도 않는데 해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생일이 그리 달갑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해봐야 그저 1년 중 평범한 하루입니다.

 

5월이 생일인 짝꿍의 딸은 4월부터 자신의 생일을 기다립니다. ‘아빠…생일이 한 달 남았는데 그때 뭐 할까? 엄마…나 너무 기분 좋아’ 그렇게 장모님의 손녀딸은 참 기뻐합니다. 설레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작고 사소한 일이 세상의 전부인 듯 기쁜가 봅니다. '아니 뭐가 그리 좋나''그럼 안 좋아? 내 생일인데?' 라며 한 달 전부터 행복해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나도 저 시절을 겪었을 텐데 말이죠.

 

무엇인가 빠진 게 분명합니다.

한참을 생각합니다.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이 잡고 사는 건 아닐까? 무슨 거창하고 엄청난 업적을 세운다고.. 인류를 위한 삶은 사는 것도 아닌데 뭐 이리 진지해만 하는 걸까? 장르만…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닿지도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저 생일 아침 부스스 눈뜨는 순간이나 손 닿지 않는 짝꿍의 등을 긁어주는 시간, 따스한 커피에서 올라오는 향기와 달그락 달그락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소리, 거리의 매장에서 선물처럼 들려오는 낯익은 음악,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계절마다 변하는 집 앞의 풍경, 주말 약속을 기다리는 마음…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매일 매일이 즐거운 이벤트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5월 27일은 딸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입니다. 나쁘지가 않습니다. 이건 뭐 일타쌍피라고 그러던가요? 참 다행입니다.

 

장르만... 결혼기념일입니다.

 

 

P.S.

일을 하다 보면 장르만... 광고대행사일 때가 있습니다. 광고기획자와 제작자가 전문가다운 폼나는 직업 같지만 실재 들여다보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으려 발을 128 BPM으로 휘젓습니다.


언젠가 광고의 젓과 꿀만 강물처럼 흐르는 소소한 날들을 희망합니다. 이거 정말 장르만... 해피엔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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