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혜화동>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아주 오래된 노래입니다만 노래는 언제나 얼굴 하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나에게는 사람마다의 테마곡이 있습니다. 예로 짝꿍은 <Fly me to the moon>입니다. 얼굴이 달덩이 같아서 일까요? 왠지 모르게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면 처음 좋아했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혜화동 또한 그런 노래입니다.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야트막 언덕에 자리한 가톨릭 신학대학을 다닌 친구. 그래서인지 노래 혜화동과 친구는 그렇게 하나의 기억입니다.
신학대학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한 탓에 얼굴이라도 보려 하면 교문 앞에서 면회를 신청하고 만나야 했습니다. 교칙도 엄격했는데 생각해 보면 성직자가 되는 과정이니 일반 대학생처럼 먹고 마시고 놀고 할 수 없었나 봅니다. 지금 그는 신부입니다.
신부로도 어느덧 20년이 넘었으니 이제 어깨 좀 필 법도 한데 성직자로 메어 있는 몸이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지금도 이리 가라면 이리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군대의 군인처럼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게 사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년 전, 4년 임기로 호주 교민이 있는 교구의 주임 신부로 파견을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야 몇 년 못 보더라도 그만이지만 문제는 연로한 아버지와 치매가 있으신 어머니 두 분만 시골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속과 세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성직자의 의무이니, 또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주말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연초부터 건강이 더 안 좋아진 아버지를 보러 친구는 1주일의 휴가를 어렵게 얻어 한국에 잠시 들어왔습니다.
겸사겸사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미 예정된 이별에 안타까워합니다.
취기가 올랐는지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그에게
‘백신부… 그거 알아? 백설공주가 38년생이거든.. 네 아버님이랑 동갑이잖아!’
‘그래?’
‘응! 아직도 백설공주가 총천연색으로 낯빛도 참 좋더라고.. 그러니 괜찮으실 거야’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넵니다.
‘그러네.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야겠다’
고맙게도, 시시껄렁한 위로에 웃으며 대답해 주는 친구입니다.
신부로의 삶과 자식으로의 삶이 있다면… 아마 오늘은 늙고 위중한 아버지의 아들로의 친구입니다.
무교에 가까운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직자로 신에 대한 믿음과 한 인간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감정은 서로 같으면서도 참 다를 것 같습니다. 아파도 아파할 수 없는 게 또 신부겠거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이고 참 쓰입니다.
아마, 그가 호주로 돌아가면 친구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할 겁니다. 누구에게나 예정된 이별이 있습니다.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넵니다. ‘백신부 걱정 마라… 너 없어도 친구들이 아버님 마지막 길 잘 모실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친구입니다.
만남의 나이보다는 이제는 이별에 익.숙.해지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그는 신부가 되었고 나는 한량이 되었습니다.
P.S.
친구 중 성직자가 한 명 있으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뭐랄까… 좀 든든합니다. 죄를 좀 지어도 이내 용서받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게임의 힐러가 팀원인 셈입니다. 광고회사에도 이런 힐러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힐러이고 싶은데 보아하니 직원들에게 나는 제대로 빌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