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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Dec 04. 2020

네 번째 하와이 : 카우아이 3일 차

오늘은 카우아이 북부로 올라가 보는 날. 


오아후의 North shore, 마우이의 Hana, 빅아일랜드의 Hilo처럼 주거지를 벗어난 Drive-Thru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스토리를 안겨준다. 사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길 따라 바다 따라 운전만 해도 그 날 써야 할 감동 크레딧은 모두 소진된다.


카우아이 북부는 Princeville 지역의 Queen's bath, Hanalei pier, Wainia 지역의 Ke'e beach, turnels beach 등이 유명한데, 오늘 나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무명인 anini beach였다. 이거 아니니? 아, 저렴한 드립. 아니니의 넓은 백사장과 초심자 레벨의 파도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나무 그늘이 많아 보여서 좋았다. 햇살을 머금어 에메랄드빛으로 비치는 바다는 그늘에서 선글라스를 벗고 보는 게 제격이거든. 그래도 태양을 쬐러 하와이에 가서 그늘이 선택의 기준이라니 이거 진짜 영감 아니니? 아, 그만하자. 


카우아이 섬은 제주도의 4분의 3 크기라 Poipu에서 Anini까지 거리상으론 멀지는 않으나, 남에서 북으로 가는 길은 1차선 시골 해안도로가 전부라,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여긴 길 찾기도 쉽고 운전도 쉬워 13세부터 운전면허증을 줘도 될 것 같다.


Poipu to Anini Beach


Anini에 도착하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Hanalei라는 도시에 들렀다. 카우아이에선 손가락에 꼽힐만한 번화한 마을인데, 소박이란 단어조차 사치일만큼 아담한 곳이었다. 하날레이에는 ching young village라는 쇼핑센터도 있는데, 킥보드를 타면 60초면 다 둘러볼 수 있는 규모였지만 나름 아기자기해서 카우아이 souvenir로 냉장고 자석이나 액세서리 하나 고르기 딱이다. 조상 중에 여름철에 노는 베짱이가 있다면 하와이 전통악기 우쿨렐레 하나 사도 좋고.


점심은 Hanalei 마을과 잘 어울리는 저렴 메뉴들이 각축을 벌이다 무수비가 당첨되었다. 삼각김밥의 전사들 답게, 이런 한 끼 너무 만족스럽다. 밥과 김과 스팸이면 푸드계의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가 아니겠는가. 무엇이 더 필요하리오.


Hanalei 마을. 닭반 사람반.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자. L&L Hawaiian Barbecue


주문은 언제나 엄마 몫


오늘의 점심 무수비. 김에 챔기름 좀 발라 주지.


음식이랑 싸우지 말고. 발밑에는 음식 떨어지길 기다리며 닭들이 대기 중


카우아이 먼저 다녀온 처제가 추천해 준 과일주스 먹으러. 


환율이 얼만데 한 잔 7.5불에 팔다니.


배와 에너지를 채우고 5분 거리의 Anini Beach에 도착했다. 구름은 듬성듬성 떠 있어 오케이. 하지만 오늘의 엑스맨은 바람이었다. 지금 이곳에 풍력발전소 세워놓으면 한국까지 전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나운 바람이 우릴 가로막았다. 아, 표현이 과했다. 어쨌든 바람이 셌다. 게다가 입수금지 푯말까지. 여기 공익근무요원들 부지런하네. 그래도 한 시간 달려왔는데 허탕 쳤다며 아까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카우아이길 운전 만으로도 아이 클렌징은 충분했고, 우리에겐 돌아갈 world best beach가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자, 유턴합시다. 포이푸로~!


anini 바닷가는 이런 모습이길 바랬다.


입수금지 푯말과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보소.


그래도 왔으니 만세 한 번 외치고


다시 돌아온 poipu beach. 지우야, 아빤 이제 늙어서 그런 자세가 안 나오네.


멍 때리는 것도 하와이라면 운치 있다.


아빠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표정


아빠 출근할 때 표정


저녁은 CJ가 차려줬다.


쨍쨍할 때 저녁을 먹기 시작했는데, 밥을 먹고 나니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마치 지구는 자전을 하지 않고, 태양을 스위치로 켰다 컸다 하는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정원의 밤. 난 각종 기기들 정비하고 사진들 정리하는 동안, 세 모녀는 3일 치 빨랫감을 들고 세탁실로 향했다.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은 세탁실이 집 뒷공간에 따로 있는 것. 건조까지 하고 천천히 들어오시죠.


그 바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 모녀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뛰어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비명의 음파를 분석해보니, 저 소리는 ear to ear로 입이 걸린 채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다행히 전기톱 살인마 따위는 아닌 걸로.


"아빠! 아빠! 저기 개구리 있어!"


아놔, 개구리가 이럴 일인가. 애들을 너무 도시 속에서 키웠나. 개구리에 뭘 그리 놀라냐며 아빠가 잡아주겠다고 하자, 지아가 "개구리가 이만해~"하면서 손동작을 취했는데, 에이 MSG 너무 심하다. 그건 축구공 크기쟎아. 근데 매사에 MSG 지수가 엄청 낮은 지영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진짜 저만했어."


난 신발을 신다가 움찔했다. 진짜? 최소 황소 개구리만 하단 말인데. 황소개구리는 살모사도 잡아먹는 생태계 교란종 아닌가. 나도 살모사한테는 이길 자신이 없는데.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아빠는 히어로! 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내가 선두에 서서 핸드폰 플래시로 앞을 비추며 나아갔고, 세 모녀는 내 뒤에서 키득키득거리며 따라왔다. 아빠의 등장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겠지만, 내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황소개구리 등장하면 아빠 주력이 얼마나 좋은지 보게 될 거야. 먼저 도망가도 미안. 그건 본능이거든.


다행히 황소개구리는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세탁은 태양 스위치가 켜 져 있는 낮 시간만 이용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 반이 된 지금도 지우 지아는 그때 개구리 이야기를 한다. 여전히 축구공 사이즈로 묘사하며.


이렇게 3일 차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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